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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핵군축 공백시대의 안보정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19 19:10

수정 2026.02.19 19:29

이달 미·러 뉴스타트 조약 기한만료
양국 핵군비통제 메커니즘 사라져
유럽·일본 등 기존정책 재검토 나서
우리는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핵 억제 심화시키는 기반을 다지고
국제 핵통제 규범의 재건 준비해야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지난 2월 5일을 기해 미국과 러시아 간 뉴스타트(New START) 조약이 기한 만료로 종료되었다. 이로써 지난 2011년 발효 이후 미국과 러시아 양국의 배치 전략핵탄두를 1550발 규모로 제한하고, 관련 정보 교환과 상호 사찰을 규정해 왔던 양국 간 대표적인 핵군비통제 메커니즘이 국제질서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핵군비 경쟁을 전개할 때 양측 합계 핵탄두가 7만발 이상에 달하던 적이 있었다. 이러한 무모한 핵군비 경쟁을 완화하고자 1970년대부터 미소 양국은 전략핵무기제한조약(SALT), 중거리핵전력폐기조약(INF), 그리고 전략핵무기삭감조약(START) 등을 체결하면서 상호 핵전력을 축소해 왔고 2011년의 뉴스타트 조약은 그 최신 성과이기도 했다. 그런데 제1기 트럼프 행정부 시기였던 2019년에 미국이 INF를 이탈한 데 이어 이번에 뉴스타트 조약마저 종료를 맞음으로써 국제 핵질서는 핵강대국 간 무조약 시대를 맞게 되었다.



물론 국제비확산조약(NPT) 체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대표적인 핵강대국들이 상호 간의 핵군비통제 조약을 벗어던짐으로써 NPT를 정점으로 한 국제 핵질서의 동요와 불안은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이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면서 보다 공세적인 방향의 핵전략을 공표하였고, 벨라루스에 수십개의 전술핵무기를 이전 배치해 두고 있다. 미국도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포함한 핵강대국들 간의 핵군비통제협상을 제안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핵전력의 현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1990년대 이후 실시되지 않았던 핵실험의 재개도 추진하고 있다.

국제 핵질서의 동요 속에서 비핵화 정책을 견지해 오던 유럽과 아시아의 중견강국들도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미국으로부터의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고, 더 나아가 핵무장 가능성도 시사하면서 지난해에는 핵우산 제공을 표명해온 프랑스와 안보협력 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어에 대한 공약 약화 가능성 등을 우려하면서, 지난해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핵우산 제공에 의한 새로운 확장억제 태세 구축을 제안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의 핵공유 체제를 구축해온 독일 등 나토 국가들이 더 강화된 핵억제 태세 구축을 모색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원폭 피폭 이후 국민들의 강력한 반핵 정서하에 비핵 3원칙을 표방해온 일본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정책 담론이 제기되고 있다. 암살당하기 직전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22년도의 '문예춘추'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핵능력 증대에 대응하여 일본으로서도 나토식 핵공유 체제 구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사사에 겐이치로 전 외무차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 등도 유사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취임 이후 새로운 동력기관에 의한 잠수함 건조방안을 정책목표의 하나로 제시하고, 1960년대부터 견지되어온 비핵 3원칙의 수정 가능성도 시사하면서 기존 핵정책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러시아 등 핵강대국들 간 핵군비통제 무조약 시대로의 이행,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유럽과 아시아 중견강국들의 새로운 핵정책 모색 동향은 우리의 안보정책에도 큰 과제를 던지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현재 80발로 추정되는 핵탄두를 더욱 늘려갈 것으로 전망되고, 2024년 러시아와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조약'에 의해 유사시에는 러시아의 재래식 전력뿐 아니라 핵전력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여 우리는 한미 간의 긴밀한 논의를 통해 확장억제 태세를 질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원자력발전소 증설 및 핵폐기장 건설 과제에 기술적으로 적극 협력하면서, 한미 확장억제 협력을 심화시키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의 확장억제를 공유하는 일본·호주 등과 그 신뢰성 강화를 위한 공동의 대응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올해 4월 개최될 NPT 재검토회의의 장을 빌려 비핵화 정책을 견지해온 우방 국가들과 공동으로 국제 핵통제 규범의 재건 필요성을 제기해야 한다.
강대국 간의 핵질서 무조약 시대 전개를 우리 안보태세에 큰 영향을 가할 수 있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식하고, 핵억제 태세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안보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