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로 조용히, 밟으면 사납게"...토요타 RAV4 PHEV GR SPORT [기똥찬 모빌리티]
전기 주행 77km, 복합연비 15.3km/L
50kW 급속충전으로 35분이면 80%
329마력에 GR 전용 하체까지 갖춰
다만 단단한 승차감·충전 환경은 감안
[파이낸셜뉴스]신호가 바뀌고 가속 페달을 밟는다. 엔진 소리는 없다. 전기 모터의 힘만으로 차가 미끄러지듯 나선다. 도심 저속 구간에서는 시종 조용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진동이나 엔진음이 끼어들지 않는다. 순간 전기차를 모는 듯한 감각. 6세대로 완전히 새로워진 토요타 올 뉴 RAV4, 그중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GR 스포츠다.
RAV4는 1994년 1세대와 함께 도심형 SUV라는 장르를 연 모델이다. 출시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 1500만대 넘게 팔린 토요타의 간판 SUV다. 국내에는 2009년 3세대부터 들어왔고, 이번 6세대는 2026년 6월 출시됐다. 이번 세대는 다양화, 전동화, 지능화를 개발 키워드로 내세웠다. 시승한 차는 라인업 최상위인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 GR 스포츠다.
앞모습부터 인상이 또렷하다. 좌우로 길게 당겨 폭을 넓어 보이게 한 이른바 '해머헤드(Hammerhead)' 형상에, 슬림한 LED 헤드램프가 예리한 눈매를 얹었다. GR 스포츠는 여기에 투톤 컬러의 전용 프런트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 와이드 휠 아치 몰딩, 리어 디퓨저와 윙 타입 스포일러를 더해 일반 모델보다 공격적인 인상을 낸다. 곳곳의 GR 엠블럼과 레드 브레이크 캘리퍼가 고성능 지향임을 드러낸다. 전용 20인치 경량 알로이 휠은 일반 휠보다 개당 평균 2.2kg가량 가볍다.
문을 열면 수평형 레이아웃의 실내가 펼쳐진다. 토요타가 '아일랜드 아키텍처'라 부르는 구성으로, 인스트루먼트 패널을 낮춰 시야를 트고 개방감을 살렸다. 계기판은 12.3인치, 중앙 디스플레이는 12.9인치 대형 화면이다. 6가지 레이아웃을 고를 수 있는 계기판과 풀HD 화질의 센터 디스플레이가 조작 환경을 직관적으로 만든다. GR 스포츠에는 논슬립 스웨이드 소재의 D-컷 전용 시트와 GR 로고가 새겨진 스티어링 휠, 알루미늄 페달이 들어간다. 좌우 양방향에서 열리는 센터 콘솔은 암레스트를 뒤집으면 트레이로도 쓸 수 있다.
주행에서 먼저 와닿은 건 정숙함이다. 이 차의 PHEV 시스템은 2.5리터 4기통 엔진과 고출력 모터, 대용량 리튬이온 배터리를 조합한다. 22.68kWh 배터리로 전기만으로 최대 77km를 달릴 수 있다. 복합 연비는 15.3km/L(도심 15.9·고속 14.6), 전기 기준 전비는 4.3km/kWh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6g/km에 그친다. 출근길처럼 짧은 도심 주행이라면 엔진을 거의 깨우지 않고 전기차처럼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시내 저속 구간에서는 엔진이 잠들어 있는 시간이 길었고, 실내는 조용했다. PCU 인버터의 작동 주파수를 높여 기계음을 줄였다는 설명이 체감으로 다가왔다.
정숙함 뒤에는 힘이 숨어 있다. 시스템 총출력은 329마력에 이른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모터가 즉각 반응하며 차를 밀어낸다. 회전수를 끌어올리는 내연기관 특유의 뜸 없이, 밟는 순간 곧바로 힘이 실리는 전동화 파워트레인 특유의 감각이다. 도심에서 신호 대기 후 치고 나가거나 짧게 추월하는 상황에서 여유가 넉넉했다. 친환경차라는 선입견과 달리, 동력만 놓고 보면 부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GR 스포츠는 이름값대로 서스펜션이 단단하다. 전용 튜닝 파츠로 차체 강성과 핸들링을 손봤고, 전방 하단부에 퍼포먼스 댐퍼를 더해 미세 진동과 뒤틀림을 억제한다. 트레드도 20mm 넓혔다. 시내를 오가는 정도에서도 차체가 노면에 단단히 붙어 좌우로 흔들림이 적은 것이 느껴졌다. 다만 그만큼 노면의 요철을 걸러내는 정도는 일반 하이브리드 트림보다 덜하다. 부드러운 승차감보다 또렷한 노면 감각과 안정성을 택한 세팅이다. 이 성향이 취향에 맞는지는 시승 후 판단하는 편이 좋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인 만큼 충전 편의도 챙겼다. 50kW CCS1 급속 충전을 지원해, 상온 기준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약 35분 만에 채운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쇼핑몰에서 짧게 충전해 전기 주행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집이나 직장에 충전 환경이 있다면, 평소 전기로만 다니다 장거리에서 엔진을 함께 쓰는 방식으로 연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편의·안전 사양도 최신 세대에 맞게 채워졌다. 토요타의 예방안전 패키지 토요타 세이프티 센스(TSS)가 기본 적용돼 긴급 제동 보조,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 차선 추적 어시스트 등이 들어간다. 커넥티드 서비스 '토요타 커넥트'는 국내 환경에 맞춰 LG유플러스와 협업해 개발됐다. 실시간 내비게이션과 네이버 클로바 기반 음성 인식, 토요타 TV 등 국내 사용자에게 친숙한 기능을 담았다. 유·무선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도 기본이다.
다만 감안할 부분도 있다. GR 스포츠는 성능 지향 트림인 만큼, 단단한 승차감이 모두에게 편안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가족을 태우고 부드러운 주행을 우선한다면 일반 하이브리드 트림이 더 어울릴 수 있다. PHEV의 장점을 온전히 누리려면 충전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충전 없이 하이브리드처럼만 쓴다면, 상위 가격을 지불한 값어치를 다 쓰지 못하는 셈이다.
올 뉴 RAV4는 HEV와 PHEV로 나뉘며, PHEV GR 스포츠의 국내 판매 가격은 6180만원(부가세 포함)이다. 개별소비세 3.5% 기준이다.
서울 시내를 오가며 짧게 타본 RAV4 PHEV GR 스포츠의 인상은, 친환경차가 꼭 얌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조용한 전기차처럼 도심을 소화하다가, 페달을 깊게 밟으면 329마력의 힘과 단단한 하체가 성격을 드러낸다. 충전 환경을 갖추고 평소 전기로 다니면 연료비를 아끼고, 가끔은 GR의 주행 감각을 꺼내 쓰고 싶은 운전자. RAV4 PHEV GR 스포츠는 그 두 가지 요구가 한 차 안에서 부딪히지 않는다는 점으로 답한다.
[email protected] 김동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