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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소리’ 이성민 “로봇 아닌 어떤 자아에게 영향 받아”

입력 2016.01.25 11:30수정 2016.01.25 11:30


[fn★인터뷰]‘로봇, 소리’ 이성민 “로봇 아닌 어떤 자아에게 영향 받아”

믿고 보는 배우 이성민이 이번에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 관객들 앞에 섰다.

이성민은 영화 ‘로봇, 소리’에서 극 중 10년 동안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아버지 해관 역을 맡았다. 이번 영화에서 이성민의 유일한 연기 파트너는 다름 아닌 로봇 ‘소리’다.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와 함께 딸의 흔적의 뒤를 쫓는다.

로봇과 단둘이 극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이성민은 ‘소리’와 함께했던 시간을 어려웠다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소리’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연기 파트너가 사람이 아닌 기계이다 보니, 그것이 가지는 기능적 한계가 존재했다. 그는 ‘‘소리’가 표현할 수 있는 동작들과 나의 연기가 어떤 앙상블을 만들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촬영 당시엔 그저 새롭고 신기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흥행에 대한 부분이 좀 절박한가 봐요. 많이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흥행이라는 건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늘 베이스에 깔린 부분이에요. 영화 홍보를 시작하면 흥행이 제일 전면에 놓이니까요. 과거 작품들을 할 당시엔 이 정도의 입장은 아니었어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다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정도였으니까요. 내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원톱 주연은 아니었으니) 의지할 데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의지할게 ‘소리’밖에 없으니까 부담이 되긴 해요”

[fn★인터뷰]‘로봇, 소리’ 이성민 “로봇 아닌 어떤 자아에게 영향 받아”

영화를 만든 이호재 감독은 ‘로봇, 소리’에 대해 인간과 로봇이 함께 그리는 ‘휴먼 드라마’라 칭했다. 딸을 찾아 헤매는 중년의 아버지와 낯선 땅에 불시착한 로봇이 만나 동행하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그들의 주장하는 것처럼 휴머니즘의 향기를 물씬 뿜어내지만,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감독님은 과한 걸 좋아하지 않으세요. 제가 표현한 해관의 감정선이 있고 감독님이 의도하는 감정선은 따로 존재했을 거예요. 제가 연기했던 해관은 처음부터 감정을 터트렸어요. ‘소리’가 구철의 수리에서 깨어나 해관과 유주가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시점을 말해주는 장면에서 부터요. 그런데 감독님이 아직은 감정이 터질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하셔서 다시 컨트롤 했죠. 연기할 당시엔 ‘이 상황에서 당연히 감정이 격해지고 눈물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감독님의 판단이 옳았던 것 같아요”

이성민과 이호재 감독은 영화를 찍는 내내 드러내지 않는 감정선에 신경 썼다. 같은 장면의 감정 표현에 대해 상의하고 다양한 버전으로 촬영했다. 이들이 심혈을 기울인 만큼, 영화는 장면 장면 생각지 못했던 요소들로 관객들의 감정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감정이 변하는 중심에는 ‘소리’가 존재한다.

“‘소리’와는 어느 순간 교감이 되기 시작하죠. 처음 구철의 가게에서 해관이 ‘소리’를 볼 때는 단순히 기계 안에 있는 정보를 보는 것에 그쳐요. 하지만 점점 ‘소리’ 자체를 보게 돼요. 정보만을 주고받다가 마음을 주고받게 되는 거죠. 특히 천문대에서 해관이 ‘소리’에게 ‘춥다, 들어가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들의 관계 변화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천문대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묘해요. 로봇이 아니라 어떤 자아한테 영향을 받았던 느낌이거든요. 그때 연기하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컷 하고 나서 ‘얘 장난 아닌데?’ 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요”

[fn★인터뷰]‘로봇, 소리’ 이성민 “로봇 아닌 어떤 자아에게 영향 받아”

‘미생’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임시완의 영화 ‘오빠생각’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게 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두 영화 모두 어찌 보면 비슷한 감성 코드를 가진 가족영화로 극장가에서 경쟁을 펼치게 됐지만, 이들은 경쟁하기보단 서로의 영화를 응원해주기로 했다고 말한다.

“‘오빠생각’을 아직 못 봤어요. 시사회 때 시완이랑 인사하고 포옹만 하고 왔거든요.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고 겨우 갔어요. 죽는 줄 알았죠.(웃음) 시완이 영화랑 개봉일이 겹칠 줄 몰랐어요. 각자의 작품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로 시사회에 참석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스케줄을 보니까 도저히 시간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7시 30분에 청량리에서 무대 인사가 있었고, ‘오빠생각’ VIP 시사회가 코엑스에서 8시에 있었거든요. 물리적으로는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계속 고민하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갔죠. 방법이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미생’이라는 작품이 끝난 후로도 그와 임시완은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래도 아닌 이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만나 호흡을 맞춘 이후에도 서로에게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는 비결을 물었다.

“시완이는 저랑 20살 차이가 나는데,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요. 미생 요르단 촬영 때도 시완이가 거의 저를 데리고 다녔죠. 전 비행기를 타본 일이 별로 없어서 거의 아무것도 할 줄 몰랐거든요. 환승도 할 줄 모르고, 공항 라운지도 쓸 줄 몰라서 시완이만 졸졸 따라다녔어요. 통역도 그 친구가 해주고, 심지어 집사람 선물도 시완이가 골라줬어요. 저는 전화나 (연락을) 먼저 하는 성격이 아닌데 시완이가 먼저 해요. 시완이, 요한이 이 친구들이. 요한이는 수시로 문자를 보내요. 그놈도 낯을 가리고 숙맥이라 전화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요한이는 성격이 전반적으로 나랑 비슷한 것 같아요. ‘미생’ 대본 리딩할 때도 김원석 감독한테 ‘쟤 좀 옛날 나 같다’는 말을 한 적도 있어요. 소리 없이 묵묵하게 본인 일을 하는 성격이에요”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20대 때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시절에 고생도 많았다. 불만이 있느냐는 오해도 많이 받고 사람을 대하는 자체가 너무 버거워 연기를 포기할 생각으로 짐을 싼 적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집에서는 누구보다 딸과 친한 아빠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로 연극을 하러 올라왔어요. 아내와 딸은 대구에 남아 있었고요. 그때부터 아이한테는 (저와 떨어지기 싫다는)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요. 저랑 친구처럼 지내요. 제가 나오는 영화도 나이 제한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는 다 챙겨봐요. 평가가 굉장히 냉정한 편인데, 딸은 군도가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했던 영화 중에서 그렇게 인정했던 영화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이성민은 그간 작품들에서 자식을 가진 아버지 역할을 종종 맡았다. 부성애가 전면에 부각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실제로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해관이 되어 그의 감정을 그리는 것이 낯설지는 않았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연기는 늘 어려워요. 하지만 실제의 모습이 있으니 해관의 감정을 공유하고, 해관이 돼 아파하고, 해관이 딸을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머리로 정리가 됐어요. 저도 딸을 키우면서 느끼는 건데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점점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것 같아요. 점점 멀어질 준비요. 결국, 누군가에게 손을 건네주는 날이 오잖아요”

[fn★인터뷰]‘로봇, 소리’ 이성민 “로봇 아닌 어떤 자아에게 영향 받아”

이성민은 그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필모그래피를 넓혀왔다. 매 작품 색다른 변신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 선택 기준은 단순히 캐릭터나 시나리오 같은 하나의 이유에 그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먼저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있는지를 보게 돼요. 그리고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번 영화도 우선 대본이 마음에 와 닿았고, 이후에 감독님과 미팅을 했는데 사람이 마음에 들었어요. 친근하고 친절하시더라고요. 재밌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선택하게 됐어요”

이성민은 인터뷰의 시작과 끝에 따뜻한 악수를 건넸다. 그가 건넨 단단하고 따뜻한 손에서는 탄탄한 내공으로 정직하게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이성민과 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아빠로서의 이성민이 동시에 느껴졌다.

한편 ‘로봇, 소리’는 오는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fnstar@fnnews.com fn스타 진보연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