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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니토, 그리고 한국의 ‘하드코어 힙합’

입력 2017.06.15 09:48수정 2017.06.15 09:48

[fn★인터뷰①] 이그니토, 그리고 한국의 ‘하드코어 힙합’


1997년, 텔레비전을 시청했던 사람이라면 개그맨 이윤석과 김진수를 기억한다. 당시 두 사람은 MBC 예능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의 ‘허리케인 블루’ 무대에 올랐다. 로커들의 헤드뱅잉, 샤우팅 창법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웃음을 주긴 충분했고, 두 사람을 스타덤에 올렸다. 이는 무명 개그맨의 성공기처럼 보이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씁쓸함도 남는다. 몇몇 로커들은 자신이 조롱거리가 됐다고 느꼈을 테니 말이다.

이그니토는 한국을 대표하는 하드코어 힙합 래퍼다. 하드코어 힙합은 1980년대에 이스트 코스트 힙합을 통해 발전한 장르로 ‘삶’ 그 자체에 대해 주로 노래한다. 한국에서는 생소했지만 이그니토가 2006년 발매한 첫 정규 ‘데몰리시(Demolish)’를 발표한 후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 앨범에는 삶에 대한 단순한 시각을 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고, 세기말적인 사운드와 충격적인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는 ‘악마의 래퍼’였다. 편하게 듣기에는 다소 무거운 가사,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음색과 비트 때문이었다. 몇몇은 ‘중 2병에 걸린 것 같다’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그니토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활동했고 지금은 한국의 하드코어 힙합을 대표하는 래퍼가 됐다. 몇몇의 조롱을 등에 업고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을 해온 대가였다.

Q.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을 해왔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다소 부족하다. 방향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음악적인 고민은 한 적 없어요. 굳이 내 생존을 위해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그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음악을 꾸준히 사람들이 알아줄 시간이 올 거라고 믿었어요. 어떻게 보면 순진했네요.”

Q. 10년 넘게 활동한 언더그라운드 래퍼로서 지금의 한국 힙합은 어던 모습인가.

“미디어에 힙합이 많이 노출되고 대세로 떠오르게 됐지만 언더그라운드는 사라졌어요. 공연 자체가 거의 열리지 않고 있고, 저처럼 음악을 하는 사람은 설 무대가 없는 환경이에요.”

Q.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아무래도 돈 때문이겠죠. 예전의 공연 기획자들은 주로 힙합 뮤지션이었는데, 이제는 전문 기획자가 와서 하기 시작했어요. 어차피 비슷한 페이라면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던, 대중적으로 조금이라도 인지도가 있는 래퍼가 좋겠죠. 그래야 관객이 많이 모이니까요. 공연장을 차려서 운영하던 아티스트들도 거의 얼마 가지 않아 수익적인 문제로 문을 닫았어요.”

Q. 이러한 힘든 언더 상황에서 잘 버티고 있는 래퍼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타협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분들을 존경해요. 허클베리피가 그래요. 그리고 제 주변에 제이통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한국 음원유통의 문제점을 알고 자기가 독자적으로 음원 유통방식을 만들었어요. 분면 더 좋은 곳에 대한 유혹도 많았을 텐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fn★인터뷰①] 이그니토, 그리고 한국의 ‘하드코어 힙합’



Q. 하드코어 힙합이 아닌 뮤지션들과 피쳐링을 하기도 한다.

“제가 원하는 무드를 맞춰줄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연락해요. 제이통은 직설적이고 장난끼 많은 그런 음악을 하지만, 제 앨범에 참여했을 때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어요. 화나, 바이탈리티도 마찬가지에요. 마이노스, 메카가 있는 바이러스는 본인들 자체는 삶의 의미를 소소하게 풀어내요. 하지만 제가 곡 설명하니 충분히 공감해줬고 제 무드에 잘 맞춰준 것 같아요. 이센스는 가사적인 역량이 컸어요.”

Q. 언제부터 하드코어 힙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가

“대학교 힙합 동아리 활동 시절에는 다양한 장르를 했어요. 그 과정에서 공연에 올라 퍼포먼스를 할 때, 밝은 표정으로 관객들을 띄우는 게 저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이런 음악을 했던 것 같아요.”

Q. 본인 성격도 음악처럼 어두운 편인가

“실제로 그렇게 안 살려고 해요.(웃음) 음악을 하다보면 그 에너지가 삶을 지배해요. 그러면 더 어두워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창작에 집중할 때는 기운을 쏟아내고 평소에는 좀 많이 생각을 놓고 살아요. 농담같은 것도 많이 하려고 하고요.”

Q. 악마의 래퍼라는 수식어와 함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되게 기분 나빴어요. 뭔가 희화화 되고 있다는 느낌이었죠. 희화화 되는 순간 내 음악을 사람들이 이해하려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ㄷㄹ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제가 ‘악마의 래퍼’처럼 캐릭터화 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걷어냈어요. 그게 나라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어떤 독보적인 느낌을 받는다면 오히려 내가 음악적으로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Q. 진지한 고찰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가사를 쓰지만 ‘중 2병’이라는 말도 있다.

“어쩔 수 없어요. 제가 가진 감성이 그거라고 생각해요. 작업을 할 때도 비슷한 느낌의 비트를 들었을 때만 가슴이 뛰고 열정이 생기거든요. 하나 덧붙이자면 이런 가사는 아무나 쓸 수 있는게 아니에요. 분위기와 주제만 가지고 가사를 쓰기 시작한다면 그거야말로 오그라들 거예요. 저는 잘 통제해서 완성도 있게 써낸다고 자부해요.”

Q. ‘이그니토가 만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제목의 가사가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본인이 쓴 게 아니었지만 정말 분위기 자체는 비슷했다.

“언젠가 크리스마스 캐롤을 내보고 싶긴 해요.(웃음) 크리스마스란 게 우리에게 주는 감성이 굉장히 복잡, 미묘하거든요. 단순히 기쁜 날이 아니라, 추위와 외로움이 주는 감정들을 한번 담아내보고 싶었어요. 겨울만의 특별한 감성이 있으니까요.”

Q. 정규 앨범을 내기 꺼리는 시기임에도 ‘가이아’를 발매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사실 현재 가지고 있는 포지션은, 언더그라운드이면서 메이저를 지향하는 음악과 활동들을 했어요. 그러면서 언더라는 추상적인 지위를 누리는 동시에 메이저로 진출하려는 것 같았어요. 그런 모습들이 언더그라운드를 마치 메이저리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봐요. 그래서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정규를 준비했어요.”

tissue@fnnews.com fn스타 유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