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희서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입력 2017.07.02 13:38수정 2017.07.02 13:38




[fn★인터뷰②] 최희서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인터뷰➀에 이어서...


“최희서의 실력은 ‘동주’에서부터 100% 검증됐다. 가네코 후미코 후보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었다”

영화계에서 굵직한 위치에 있는 감독이 상업영화 속 생소한 신예 배우에게 이러한 깊은 신뢰를 드러내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내 인터뷰를 통해 만난 최희서와의 짧은 대화 끝에 그녀가 지닌 깊은 지성과 척박한 환경 속 피워낸 불굴의 의지를 발견했고 마냥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박열’은 1923년 도쿄를 배경으로 해 6천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 분)의 실화를 담은 영화로, 권력 혹은 정부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아나키즘의 시작을 알리며 독립을 위한 조선인들의 저항과 뜨거운 열망을 담아냈다.

극중 최희서는 박열과의 첫 만남에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소개하며 단번에 동거를 제안하는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았다. 일본인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를 반대하며 항일운동을 하는 여성으로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다. 박열의 신념과 동지이자 연인인 쿠미코는 그와 함께 투쟁하기 위해 스스로 수감되고, 갖은 회유와 압박에도 주눅 들지 않은 채 본 제국을 뒤집어놓은 재판의 주인공을 자처한다.

쿠미코를 연기하는 최희서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실제 일본 여성을 보는 듯한 익살스러움과 순수한 모습은 물론, 바르지 못한 것을 향해 당당히 외칠 줄 아는 통쾌함을 자신이 지닌 다채로운 표정 연기로 올곧이 표현한다. 최희서가 그려낸 쿠미코는 극중 이제훈의 연인이 아닌, 그저 그 시대의 틀림을 바로잡기 위해 투쟁했던 빛나는 여성이었다.


[fn★인터뷰②] 최희서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 극중 가네코 후미코의 나이인 23살의 최희서는 어떤 일상을 보냈나.
“미국 교환학생 연극 전공으로 갔던 때에요. 제 생애 가장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 거 같아요. 하루 종일 연극 연습하고, 수업 듣고 했거든요. 학교 다닐 때 연극동아리였기 때문에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연극 연습을 하면서 이중생활을 했어요. 방학 때도 하긴 했지만 연습실의 형편이 안 좋다든지 제 만족을 채워줄 만큼의 연기할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UC버클리에서는 하루 종일 연기만 하니, 그 때는 쿠미코만큼 발랄하고 활동적이었던 스물 세 살이었죠.”

▲ 5개국어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이다.
“중국어는 잘 못하는데.(웃음) 일본어는 잘할 수 있고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영어 연기도 할 수 있어요. 사실 영어가 필요한 역할이 많았기 때문에 영어 연기는 꽤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때는 힘들게 배웠지만 사실 그건 살아남으려고 배운 언어에요. 간혹 비결을 묻는 분들이 계신데 그저 저는 교과 과정을 따라 가기 위해 배웠어요.(웃음) 감사한 일이죠. 만약 다른 일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쓰임새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연기를 통해 특기로 활용이 된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 연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처음부터 연기만 했던 사람은 아니지 않나.
“원래 연기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는데 미국, 일본에 살면서 연극영화과가 있다는 건 전혀 몰랐죠. 고등학교 때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두 가지 공부를 했거든요. 낮에는 미국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한국 교과과정을 다니고 공부만 했어요. 연기를 하고 싶긴 한데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고, 입시 준비를 워낙 어렸을 때부터 했던 터라 대학교 진학은 당연한 거였거든요. 다행히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했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엄마는 ‘대학교 들어가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진짜 하실 줄은 모르셨나 봐요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입학식은 안 가고 연극 동아리 방으로 갔어요. 그 때부터 일직선으로 연기만 해오면서 살았어요.”


[fn★인터뷰②] 최희서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 하고 싶은 일을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버티기엔 힘이 들텐데 슬럼프가 오지는 않았나.
“‘동주’ 전에 28살에 연극을 했었던 때가 있어요. 오디션마다 떨어지고 상업영화는 부르지도 않았으니 기회가 없었어요. 소속사가 없으면 오디션 자체도 보기가 힘들 거든요. 연기는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으니 친한 배우들과 돈을 모아서 대관을 하고 포스터를 만들며 그렇게라도 연기를 했죠. 사실 자괴감 들었어요.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데 보여줄 길은 없는 거잖아요.”

▲ 상업 장편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한 ‘동주’를 만난 게 운명 같겠다.
“그 때 연극 대본을 지하철에서 매일 읽고 있었어요. 그런데 신연식 감독님이 지하철역에서 저를 발견하시고는 너무 열심히 하니까 그게 특이했는지 명함을 주셨어요. 예쁘거나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너무 이상해서 명함을 주신 거에요.(웃음) 이후 ‘동주’를 이준익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쓰고 제작을 하시는데 저한테 물으시더라고요. 특기가 일본어로 되어있는데 어느 정도로 잘하냐고요. 바로 연락이 오지는 않았어요. 한참 뒤인 11월에 전화가 오셔서 미팅을 하자고 하셨어요. 그 때부터 ‘동주’도 찍고 ‘옥자’도 하고 작은 단편이나 드라마 ‘안투라지’도 했어요. 그렇게 상업적인 무대에서도 기회가 조금씩 생기다가 ‘박열’까지 만났죠.”

▲ 이번에 만난 ‘박열’에서 그 누구보다도 빛을 발한 것 같다. 이후 다가올 일들이 기대가 되지 않는가.
“제가 20대 초반이면 방방 뛰어다닐 것 같은데 제가 나이가 많아요.(웃음) ‘박열’에 캐스팅됐을 때도 기대를 안 하려고 했던 게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오디션 떨어지면서 버텼던 저만의 방법이에요. 친구들도 저한테 ‘앞으로 길 다니기 힘들겠네’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 삶에 어떤 큰 변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은 안 하고 기대도 안 가지려고 해요.”

▲ 하지만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는데.
“봤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얼떨떨하고 불안해요. 왜일까 싶었어요. 제가 많이 궁금하신가 싶었어요.(웃음) 그 기대에 부응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어서 지금은 일단 열심히 하는 걸로 보답을 하려고요.”

▲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연기를 믿고 보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한 이미지를 갖는 것보다는 대중 분들이 제가 한 역할을 보고 싶어 하시면 좋겠어요. 배우의 작품을 보고 싶은 게 만드는 배우가 좋은 배우가 아닐까요? 여배우라는 수식어보다는 배우 혹은 연기자라는 수식어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송강호 선배님처럼요. 송강호 선배님은 모든 국민이 봐도 딱 알 수 있는 독보적인 브랜드가 있으시잖아요. 전도연 선배님이나 김해숙 선배님도 닮고 싶어요. 현재 30대 초반 배우인 제가 앞으로도 10년 20년 연기를 해갈 때 선배님들처럼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부당하게 느끼는 것 같다.
“사상이 너무나 뚜렷한 쿠미코 역을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크게 잘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관련 서적도 읽어볼 정도에요. 최근 퍼진 페미니즘이란 사상 자체가 왜곡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여성을 존중해라’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은 같은 위치에서 시작되어야한다는 거예요. 그런 부분을 많이 생각하고 있지만 제 블로그나 SNS에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히 그 이념에 대해서 확립이 되어있지 않은데 진정한 페미니스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위험이 있기 때문이에요. 대신 질문을 던질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9009055_star@fnnews.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사진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