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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천문:하늘에 묻는다’의 직무유기죄

입력 2020.01.31 16:33수정 2023.02.20 12:07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천문:하늘에 묻는다’의 직무유기죄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통해서 인재들을 양성하였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수많은 편찬사업을 주도하면서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노비 출신이었던 장영실은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서 ‘과학을 위해 태어난 인물’로 칭송받았다고 한다. 장영실은 세종대왕과 함께 혼천의, 간의 등의 천문관측기구, 유럽보다 200년이나 앞서는 측우기,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등을 만들어 과학발전에 기여하였다.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는 가장 위대한 왕인 세종대왕(한석규 분)과 조선시대의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최민식 분)의 이야기이다. 신분의 양 극에 있었던 왕과 노비가 신분을 초월하며 만들어가는 우정이 아름답다.

작품 속에서, 세종대왕은 장영실이 만든 혼천의, 간의 등의 천문관측기구를 부수라고 명하고, 관료들은 세종대왕에게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를 강권한다. 위와 같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자주성에 위배되는 행위들은 직무유기죄에 해당할까?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천문:하늘에 묻는다’의 직무유기죄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함으로서 성립하는 범죄이다. 직무유기죄의 주체는 공무원으로서 구체적인 직무수행 의무가 있어야 한다. 공무원이 휴가 중이거나 병가 중이면 직무유기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직무수행 거부는 본래의 직무 또는 고유한 직무를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무원이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직무유기란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 또는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경찰관이 벌금미납자로 지명 수배되어 있던 사람을 세 차례 만나고도 검거하여 검찰청에 신병을 인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죄가 성립한다. 검사의 지휘를 받아 형집행장을 집행하는 경우, 벌금미납자 검거는 경찰관의 직무범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직무유기죄의 보충성 때문에 다른 범죄가 성립되면 직무유기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공무원이 위법사실을 은폐할 목적으로 허위공문서를 작성하면 허위공문서작성죄만 성립하고, 경찰공무원이 직무를 유기하면서 범인을 도피하게 하면 범인도피죄만 성립한다.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천문:하늘에 묻는다’의 직무유기죄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있으면 법정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거나 내용이 부실하더라도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공무원은 직무유기죄로 처벌되지는 않더라도 다른 범죄가 처벌될 수도 있고 징계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경찰공무원이 직무집행의사로 위법사실을 조사하여 피의자를 훈방하는 등의 형태로 직무집행을 하였다면 형사피의사건으로 입건하여 수사하지 않은 부실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무유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장영실과 함께 만든 천문대, 혼천의, 간의 등의 천문관측기구를 부수고 불태운 것은 당시 조선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하들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주장하는 것은 조선의 자주성에 반하는 것으로서 그 내용이 부실하기는 하지만 직무수행은 있었기 때문에 직무유기죄는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세종대왕과 장영실은 자신의 자리를 뛰어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영화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특권만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천문:하늘에 묻는다’의 직무유기죄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