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이 굴린다

      2000.07.23 04:49   수정 : 2014.11.07 13:44기사원문

포뮬러 1(F1)의 뒤에는 버니 에클레스톤이라는 거물이 베일에 가려진 채 버티고 있다.

에클레스톤은 F1 등 4개 자동차 경주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의 부의장이다. 의장은 1991년 이래 맥스 루퍼스 모슬리가 맡고 있다. 그는 에클레스톤의 오랜 친구이자 고문변호사다. 에클레스톤이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인으로 탈바꿈한 것도 모슬리가 FIA 의장으로 있는 사이 이뤄진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1971년 10월 에클레스톤은 F1 참가팀인 ‘브레이브햄’을 매입했다.
당시 모터스포츠계는 온통 돈많은 아마추어들뿐이었다. 트랙과 경주차는 부실하기 그지없고 TV 방송사들은 영국 그랑프리와 모나코 대회 같은 굵직굵직한 이벤트 한두 건만 중계했다.

다른 경주팀 소유주들 상당수는 F1의 경영에 별 관심도 없는 엔지니어나 선수 출신이었다. 그들은 이런 문제를 에클레스톤에게 일임했다.

에클레스톤이 F1 참가팀 협회(FOCA) 회장이 된 것은 1970년대 중반. F1 운영비가 점증하던 당시 FOCA와 FIA는 F1의 주수입원인 TV 중계권료와 프로모터들의 수수료를 서로 장악하려 했다.

그러던 중 1980년 이른바 ‘콩코르드 합의’에 따라 F1의 수익은 FIA와 FOCA로 배분되고 FIA가 상급기구로 인정된 것은 물론 TV와 라디오 중계권 등 모든 수익사업권까지 FIA에 귀속됐다. 그러나 수익사업권은 이후 4년 동안 에클레스톤이 장악중인 FOCA에 독점 위임됐다.

콩코르드 합의에 서명한 팀들은 모든 경기에 참가해야 했다. TV 방송사들로서는 시청자에게 많은 팀이 참가하는 자동차 경주의 장관을 직접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에클레스톤은 1982년 유럽 공영방송사들의 협의체인 유럽방송연맹(EBU)과 중계권 계약을 체결,많은 돈을 끌어들였다. 유럽 방송사들은 계약에 따라 특정 이벤트만 중계하는 게 아니라 모든 그랑프리를 송출해야 했다.

1990년 에클레스톤은 EBU와 FOCA의 계약을 경신하지 않았다. TV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된 방송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F1이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세계 스포츠로 발돋움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F1에 군침을 흘리는 광고주들이 크게 늘면서 FOCA는 더 많은 중계권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87년 에클레스톤은 FIA 부의장이 됐다. 당시 FOCA 가입 팀들은 에클레스톤 소유의 F1 프로모션스 앤드 어드미니스트레이션사(FOPA)에 수익사업권 운영을 맡겼다.

F1의 수입원은 두 가지. 하나는 방송 중계권료이고 다른 하나는 F1 프로모터들이 지급하는 수수료였다. TV 중계권료 가운데 47%는 F1 팀들,30%는 FIA,나머지 23%가 FOPA 차지였다. 프로모터들의 수수료는 FOPA가 관리했다.

F1 참가 팀들이 프로모터들 수수료를 FOPA에 일임한 것은 에클레스톤의 사업수완을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 팀은 방송·언론 매체와 관련된 권리는 물론 트랙 옆 부착 광고물에 대한 수익권도 그에게 양도했다.

FIA는 1995년 에클레스톤의 F1 매니지먼트사(FOM)에 FIA의 F1 수익사업권을 14년 동안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FOCA의 역할을 FOM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에클레스톤은 F1을 증시에 상장하면 큰 돈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문제는 에클레스톤이라는 이름이 F1의 권리를 규정한 계약서 어느 곳에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해결됐다. 1995년 FIA가 F1과 관련된 제반권리를 14년 동안 연간 800만∼900만달러에 FOM으로 넘긴 것이다.

에클레스톤은 F1 사업을 도맡을 F1 홀딩스(FOH) 설립에 나섰다. 그러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F1의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 조사에 들어가자 계획은 보류됐다. 이윽고 1999년 6월 EU 집행위원회는 F1에 경쟁법 위반 판결을 내렸다.

에클레스톤으로서는 다른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생각해낸 것이 채권발행이다.

지난해 여름 FOH는 채권발행으로 10억 달러를 기채했다. 채권발행 후 에클레스톤 일가 소유의 신탁회사 F1 파이낸스는 FOM의 지주회사인 SLEC 홀딩스 주식 50%를 매각,10억 달러를 더 끌어들였다.

채권발행 기업은 이른바 ‘사업설명서’를 준비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F1의 TV 중계료 총수익은 2억4100만달러였다.

한편 FIA는 지난달 28일 에클레스톤의 F1 수익사업권을 100년 더 연장해줬다.
이번에도 모든 과정이 비밀에 부쳐지고 관계자들은 함구로 일관했다.

/ jelee@fnnews.com 이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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