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번호이동,소비자엔 毒

      2008.10.07 23:04   수정 : 2014.11.05 11:50기사원문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번호이동제도는 가입자가 서비스 회사를 바꾸기 쉽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 그러나 지나치게 손쉬운 제도가 최근 일부 판매점에 악용되면서 오히려 소비자와 시장에 독이 되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2004년부터 4년 이상 운용한 경험을 바탕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번호이동은 불완전판매 시스템

번호이동은 자기 휴대폰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통신회사만 바꿀 수 있는 제도다. 기존 쓰고 있던 A회사 서비스를 해지하고 B회사에 새로 가입하는 두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도는 B회사에 가입하면서 자동으로 A회사가 해지되도록 한 단계로 간편하게 설계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이 B회사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바꾸기만 하면 번호이동이 이뤄져 A회사 서비스를 해지할 때 어떤 불이익과 손해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유통과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악용이 가능한 단순구조로 돼 있는 게 국내 번호이동제도의 문제점”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 번호이동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우리나라 제도를 벤치마킹해 미비점을 보완해 설계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일본은 가입자가 A회사에 번호이동으로 B사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A사가 B사에 통보하고 고객이 B사 대리점에서 새 휴대폰을 받고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도록 두 단계로 돼 있다. 고객이 A, B회사와 모두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가입자가 철저히 손해를 따져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다.

■판매점들의 소비자 보조금 착복 사례도 빈발

불완전한 번호이동 제도가 악덕 판매점에 악용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해지 가입자 명의의 이동전화를 해지하지 않고 일시정지시켜뒀다가 다른 신규고객에게 명의를 변경하고 번호이동을 해 다시 판매하는 교묘한 수법을 쓰는 것. 이 때 이동통신 사업자는 해지된 가입자인 줄 모르고 보조금을 지급한다. 결국 고객 이름으로 나오는 보조금을 판매점이 착복하는 것이다. 더구나 해지 가입자의 개인정보는 즉시 삭제를 해야 하지만 해지처리가 되지 않았으니 이 고객의 개인정보는 판매점에 남아 개인정보 유출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노숙자 이름으로 이동전화에 가입한 뒤 판매점이 이리저리 번호이동을 하면서 보조금을 착복하는 사례는 이미 고전적 수법이 됐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소위 ‘대포폰’들은 각종 범죄에 악용되면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장기할인 연 500억

번호이동 제도 때문에 생기는 소비자 피해도 만만치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일리지나 장기할인 혜택 문제다. 기존 이동전화 회사에서 쌓은 장기할인 혜택을 모두 사용하고 번호이동을 하는 사람은 전체 번호이동 가입자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동통신 3사는 이렇게 허공으로 사라지는 장기할인 혜택이 연간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판매점들이 ‘공짜폰’이라고 속이고 가입자에게 휴대폰 할부대금을 신청하면서 소비자 민원이 급증, 방송통신위원회가 공개적으로 소비자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결국 소비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번호이동 제도가 운용과정에서 오히려 소비자와 통신시장의 피해를 양산하는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늘고 있다.

/cafe9@fnnews.com 이구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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