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급증..年 36% 어음할인도 힘들어

      2008.10.15 17:45   수정 : 2014.11.05 11:12기사원문


15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인근 6층 건물에 위치한 한 어음중개업소 사무실의 전화통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66㎡(2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직원들은 5대의 전화기를 들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모든 전화가 통화 중이 되면서 휴대폰도 쉼 없이 울려댔다. 이 중개업소의 한 임원은 “망할 것이 뻔한 기업의 어음을 받을 업자가 어디 있냐”고 반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외 자금흐름이 사실상 막히면서 한계기업들이 서울 명동 사채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부터 ‘키코’ 피해를 본 중소기업까지 명동성당과 은행회관 주변에 형성된 명동 사채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어음중개업소란 간판을 걸었지만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기업들에 고금리지만 자금을 융통해 주는 사채업자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또 다시 뉴스의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높은 이자를 준다는 유혹에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학습효과로 명동 사채시장은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확실하지 않는 기업은 아예 외면하고 있어 흑자부도를 걱정하는 중소기업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신한캐피탈 고위 관계자는 “1, 2금융권은 이미 9월부터 불확실한 금융시장 상황을 맞으면서 자금을 꽁꽁 묶어놓고 있다”며 “일부 기업이 사채시장에 몰리고 있지만 그쪽에서도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아 오늘내일 부도를 걱정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제1금융권은 물론 제 2금융권에서 냉대를 받고 있는 B급 기업의 어음은 현금화를 위해 ‘바닥(사채시장)’을 누비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A급으로 분류되는 대기업의 진성어음(일반어음·물품 거래를 동반하는 어음)까지 사채시장에 대거 등장하고 있다. 기업들이 신용만으로 발행하는 융통어음인 기업어음(CP) 등이 아닌 진성어음까지 명동에 등장했다는 것은 자금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다.

특히 건설업계 어음은 제도권 금융업계에서 자금이 완전히 끊기면서 밀리고 밀려 명동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실제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인 K사의 3개월 만기 어음은 최근 명동의 한 사채업자로부터 월 3%에 3억원 규모의 어음할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이자로 환산하면 연 36%다.

이 기업의 어음을 할인해 줬다는 명동 사채업체 관계자는 “1억원짜리 세 장을 월 3%, 연 36%로 어음할인을 해 줬다“면서 “최근 사채시장에서는 외환위기 때처럼 기업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루머가 퍼지면서 BB등급 중견기업의 경우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명동 사채업 관계자는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시도해 온 C그룹의 경우 향후 경영구도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사채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면서 “이 외에도 M&A를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섰던 국내 주요 기업인 D기업과 또 다른 D그룹의 어음마저 헐값에 사채시장에서 등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던 금융시장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 한 주간 서울 명동 사채 금리도 수직상승을 거듭하며 최고 월 2.5∼3%대까지 치솟았다. 연 30%를 훨씬 웃도는 금리다. 신용도에 문제가 생긴 기업들은 대부업체에서조차 하루짜리 초단기자금 확보도 힘든 상황이다. 이재선 대부업협회 사무총장은 “최근 대부업체들도 기업에 대해서는 추가 대출보다 원금회수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라면서 “하루 금리 1%의 초단기대출도 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또 “제2금융권은 물론이고 대부업체들도 자금상황이 크게 좋지 못하다”면서 “일반 가계대출 금리도 종전 연 13%에서 14∼15% 수준으로 고공행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음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정보기술(IT) 벤처기업들도 최근 제도권 내 대출이 완전히 끊기면서 자금 확보를 위해 사채시장을 기웃거리는 사례가 부쩍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역삼동의 IT벤처기업인 S사의 이 모 이사는 “벤처기업의 경우 기업어음을 받지도 발행하지도 않는 것이 관행”이라면서 “그러나 최근 환율 급등으로 해외결제금액이 폭증하면서 자금 구하기에 혈안이 된 기업들이 명동 사채시장에 손을 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다른 사채업 관계자는 “돈을 원하는 곳은 많은데 구할 곳은 없다는 의미”라면서 “외화와 원화 자금시장 경색은 물론이고 최근 환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키코 거래로 손실을 본 기업이 쏟아지면서 이들 기업의 자금압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mjkim@fnnews.com 김명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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