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보다 붉은 유혹, 순창의 가을

      2014.10.30 18:21   수정 : 2014.10.30 18:21기사원문

【 순창(전북)=강문순 레저전문기자】 전라북도 순창, 고추장 등 장류의 고장으로 유명하지만 강원도의 동강을 떠올릴 정도로 섬진강의 휘몰아침이 아름답고 목가적이다. 섬진강 상류에 위치해 강폭은 넓지 않지만 한번 가보면 또 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곳이다. 600m가 안되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강천산의 단풍은 고추장 빛깔보다도 더 붉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전설과 고추장 불고기의 음식맛, 순창은 1박2일의 여행지 가운데 으뜸이 아닐까.

■고추장보다 더 붉은 강천산 단풍

고추장 다음으로 순창에서 유명한 강천산은 높이가 584m에 불과하지만 100대 명산으로 꼽힐 정도로 산세가 아름답다. 순창군 팔덕면과 담양군 용면의 경계에 있고 수려한 산세와 웅장한 암벽, 폭포 등 갖출 것은 다 갖췄다.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이유다.


원래 이름은 용천산(龍天山)이었다. 산세가 용이 꼬리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아서다. 1982년 전국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천혜의 비경도 잘 보전되고 있다. 지난해에만 무려 120만명 이상이 다녀갔다고 한다. 절정은 역시 단풍철. 설악과 내장산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산이 높지 않으니 오르는 부담도 덜하다. 동네 야산을 산책하는 것보다 조금 더 힘을 쓰는 정도다. 예닐곱 시간씩 걸리는 강천산 일주산행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병풍계곡에서 강천사를 지나 현수교 전망대를 거쳐 구장군폭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를 선호한다. 가볍게 산책하듯 풍경과 산세를 고루 엿볼 수 있다. 매표소에서 구장군폭포까지는 약 5㎞ 남짓. 왕복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매표소를 지나 첫 번째로 만나는 절경은 병풍폭포. 4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원래는 자연폭포지만 물을 인공으로 끌어올려 사철 폭포가 마르지 않는다. 초록빛 터널을 이룬 22그루의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지나면 강천사다. 소박한 절집으로 천왕문도 따로 없지만 신라 때 창건돼 역사가 깊고 절집 곳곳에선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강천사를 등산로에 조성한 대나무 숲길도 운치가 있다. 여기서 10분 정도 걸으면 강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를 만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현수교인 구름다리는 지상 50m 높이에 폭 1m, 길이 76m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거려 정신이 아득해진다.

다시 산책로로 내려와 10여분 더 걸으면 구장군폭포다. 120m 높이. 그저 장엄한 모습에 순간 걸음이 멈춰진다. 마한시대 아홉 장수가 죽기를 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구장군폭포는 쌍폭으로 장마철에만 폭포수가 쏟아지는 마른 폭포지만 물을 끌어올려 사계절 폭포수가 쏟아지게 됐다.



■여체의 신비를 간직한 장군목 바위

순창 적석면 적석강 상류 부근 여체를 닮은 울퉁불퉁한 바위가 놓여 있는 곳, 장군목이다. 주변 길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섬진강 자전거 도로다. 최상류인 진안에서부터 순창을 거쳐 곡성, 구례를 지나 광양까지 흐르는 강 옆으로 매끈한 길이 놓였다.

장군목의 바위들은 둥글둥글 여체를 닮았다. 풍만한 나신의 여성이 수십명 나란히 누워 있는 듯하다. 그리고 가운데는 이름마저 망측한 요강바위가 있는데 이게 정말 특별하다. 높이 약 2m 정도의 바위 속이 빨대처럼 뚫려 있는데 어른 몇이 들어가도 될 만큼 깊다. 여자가 앉으면 아들을 수태할 수 있을 정도로 효험이 있다고 한다.

장군목 앞엔 현수교가 하나 섰는데 오로지 자전거를 위한 다리다. 제대로 차려입은 라이더 몇이 씽씽 지난다. 가을 섬진강을 달리는 즐거움이야 어련할까. 장군목 부근 섬진강 자전거 인증센터 앞에는 라이더들이 쉬고 묵어갈 마실펜션이 있다. 일종의 길손 주막이다. 땀 흘리며 페달을 내딛다 어둠이 내려앉은 섬진강변에서의 하룻밤.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 깊은 잠에 빠져들 듯하다.

■장맛, 천혜의 조건 순창

순창이 고추장의 명산지가 된 것은 그 자연 조건이 일조를 했다. 연중 기온편차가 적고 습도가 낮기 때문이다. 순창은 연평균 12.4도, 습도 72.8%, 안개일수 77일로 고추장이 발효되는 데 최적의 장소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예로부터 옥천(玉川) 고을로 불릴 정도로 좋은 물이 풍부한 것도 중요한 이유다. 영양가 높은 토질은 건강한 고추를 생산하고 있다. 순창이 고추장을 비롯해 모든 장류의 최고 생산지로 각광받을 수 있는 이유다.

구림면 안정리에는 만일사(萬日寺)라는 사찰이 있다. 꼬불꼬불한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한참이나 올라가야 하는 산 중턱에 있다. 여말선초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만일 동안 나라를 위해 수도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만일사의 한쪽 건물에서는 '순창고추장 시원지 전시관'이라는 건물이 서 있다. 만일사에서 순창고추장이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내용인즉 이렇다. 고려 말 이성계가 황산대첩을 통해 왜구를 무찌르고 남부지방을 평정한 후 순창에 들렀다.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던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한 농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여기에서 이성계가 고추장의 전신 격인 '초시'를 맛보고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훗날 왕위에 올라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이를 진상하라는 지시를 했고 이에 따라 진상품으로서 순창 고추장이 유명하게 됐다는 것이다.


순창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는 역시 고추장 등 장류를 주제로한 '순창장류축제'다.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올해로 9회째를 맞는다.
장류를 테마로 다양한 체험거리와 푸짐한 먹을거리,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mska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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