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도리와 품격

      2015.01.05 16:44   수정 : 2015.01.05 16:44기사원문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서 털을 빼면 개나 양의 가죽과 무엇이 다른가." 위나라의 대부 극자성은 자공이 호화로운 사륜마차에 스승인 공자를 태우고 전국을 일주하는 것을 보고 "군자가 자질을 갖추면 됐지 왜 꾸미고 다니느냐"고 빈정댔다. 그러자 자공이 이렇게 반박한 것이다. 또 극자성이 자공을 질책한 이면에는 재벌급 거부인 자공에 대해 부족함 없이 잘사는 부자가 왜 공부한답시고 공자를 쫓아다니느냐는 비아냥도 깔려 있다.

춘추시대 위나라 출신 거상인 자공은 물건 사고팔 때를 잘 읽어 사업가로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공자보다 31세 연하인 그는 공자의 제자가 돼 유학자의 길을 걸으며 공자를 경제적으로 적극 도와주었다. 말년에 그는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이 돼 재력과 뛰어난 언변으로 오나라의 적대행위 때문에 발생한 노나라의 위기를 해결하는 등 정치가로서 수완을 발휘했다.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들을 다룬 '중니제자열전' 중 가장 많은 페이지를 자공에 할애했으며 부자들의 이야기를 기술한 '화식열전'에도 따로 그를 소개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마천이 자공을 높이 평가한 이유는 공자가 명성을 얻고 유학이 주류 학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전적으로 자공의 후원 덕분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공자가 일생 3000 제자를 뒀다지만 개중에는 수업료조차 내지 못하는 이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자 홀로 학원을 경영하며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또 공자가 죽은 이후 6년상을 지내며 제자를 모아 학파로 정비하고 '논어' 등 스승의 가르침을 책으로 편찬한 일 등은 모두 자공의 재정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자가 천하에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국 제후들에게 강독을 하면서부터였다. 이때 자공은 자신의 재력과 인맥을 총동원해 비단 등의 선물보따리를 갖고 공자를 자신의 사두마차에 태워 제후들을 방문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예컨대 월나라를 방문했을 때 월왕 구천이 직접 나와 길을 청소하게 하고 자공 일행을 숙소까지 안내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논어'에는 공자가 자공을 면박주고 꾸짖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반면 수제자 안회에 대해서는 하나를 이야기하면 열을 안다고 칭찬하고 있다. 또 진자금이란 사람이 자공에게 "당신이 공자보다 어질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자공은 "내가 스승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계단을 밟아도 하늘에 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며 철저히 자신을 낮췄다. 오늘날 같으면 자공은 대학재단 이사장 자리에 올라 얼마든지 공자를 총장이나 학장에 임명하고 그 위에 군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자로서 스승을 뒷바라지하고 역사에 남을 최고의 학자로 만들어 바른 사회 형성에 이바지한 것이다.

공자는 "부와 귀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이나 바른 도리로 얻지 않으면 이를 취하지 말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바른 도리를 다한다면 얼마든지 부를 누리라는 이야기다.
자공은 끊임없는 자기수양으로 예의범절을 익히고 부자로서 베풀 수 있는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 도리를 다한 만큼 그 자신은 부자로서 개 가죽옷이 아니라 호랑이 가죽옷을 입을 자격이 있다고 당당히 말한 것이다.
이것이 자공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부자의 품격'인 것이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경영지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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