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도 아웃소싱한다?

      2015.04.08 16:17   수정 : 2015.04.08 16:17기사원문

케른 로스는 '잘나가는' 영국 외교관이었다. 뉴욕 주재 영국 유엔대표부 고위 외교관으로 안전보장이사회의 중요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 2002년 유엔의 대이라크 정책,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중심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결성에 관여했다. 2002년 6월 그는 선망의 직업을 그만두었다. 미국과 영국 중심의 대이라크 정책이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을 때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로스는 곧바로 독립 외교관(Independent Diplomat)이라는 외교 컨설팅 업체를 차렸다.
외교관이 독립되었다니?

외교관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절이다. 세상에 독립된 외교관이 어디 있겠는가. 다 자국의 국익을 대변하며 국경 없는 세계화시대에 치열한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사가 아닌가. 이런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외교도 아웃소싱할 수 있다는 새로운 장을 연 게 독립 외교관이다.

코소보나 북아프리카의 서사하라 등 아직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지역뿐만 아니라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외교 역량이 부족한 국가들도 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로스는 이런 외교사절에 합류해 유엔 관계자들을 만나 이들의 권익을 대변한다. 로스와 그의 팀은 기후변화로 수몰 중인 오세아니아의 마셜제도와 인도양의 몰디브 외교관들과도 힘을 합쳐 유엔기후변화 협상에서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협상을 해왔다. 독립 외교관은 세계화와 첨단 정보기술이 변화를 몰고온 21세기의 외교 현장을 잘 보여준다. 로스는 세계 각지의 전문가 풀을 확보해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일부는 무료로 봉사해 주기도 한다.

격랑에 휩싸인 동북아시아에서 우리에겐 외교 역량의 극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인력과 조직만 키운다고 역량이 배양되고 확대되는 게 아니다. 기존 인력과 조직에서도 정책 우선순위를 파악해 유연성 있게 조직을 운영하고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적기에 제공하면 역량을 확대할 수 있다.

영국은 2015년까지 세계 최고의 외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2010년에 세우고 외교 역량 강화에 힘써왔다. 여권 발행과 비자는 과감하게 다른 부처로 이관했고 대사관의 공증업무도 현지 업체에 맡기는 추세다. 전 국민보다 더 많은 해마다 6000여만명이 해외여행을 나가는 영국이어서 영사 업무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다른 핵심 업무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나가는 우리 국민의 수가 연간 1400만명을 넘었다. 점차 더 늘어날 것이다. 2004년 6월 이라크에 근무하던 김선일씨의 피랍 및 피살사건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의 재외국민 보호에 대한 기대는 크게 높아졌다. 이 사건 전과 후 국민들의 기대 수준은 질적으로도 다르다.
반면에 우리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경제협력 강화, 재외국민 보호 서비스라는 우리 외교정책의 핵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교도 아웃소싱할 수 있다는 과감한 인식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핵심 역량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 함께 지혜를 모을 때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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