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쓰고 갚으려던 마이너스통장 헤어나오기 힘든 덫이 됐다
2017.03.01 17:06
수정 : 2017.03.01 22:03기사원문
2.B씨(33)는 2014년 결혼을 앞두고 4000만원 한도로 시중은행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았다. 전세금이 부족했던 그에게 은행 직원은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권했던 것이다. 대출 금리는 5%대로 다소 비싸게 느껴졌지만, 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 때문에 마음이 끌렸다. 몇 개월 후 전세금 대출은 모두 갚았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마이너스통장을 쓰고 있다. B씨는 "필요할 때마다 쓰고 다시 채워넣을 수 있는 마이너스통장을 알고 난 이후 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줄어든 소득...믿을 건 '마이너스통장'뿐?
통계청이 공개한 '2016년 4·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을 보면 우리나라 실질 가계소득은 오히려 0.4%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실질 가계소득이 감소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번졌던 2009년(-1.5%) 이후 처음이다. 월급이 오르지 않았던 탓이 제일 크다. 실제 근로소득 증가율은 2012년 7.7%에서 2014년 3.9%로 반토막 났고, 작년엔 1.0%까지 줄었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을 만큼 졸라맸다. 물가상승분을 더한 명목상 소비지출(전체지출-비소비지출)은 지난해와 비교해 0.5% 감소했고, 물가상승분을 뺀 실질가계지출은 1.3% 줄었다. 옷과 신발에 쓸 돈을 작년보다 2.4% 줄였고, 통신비도 2.5% 줄였다. 치솟은 장바구니물가 속에서도 아끼고 아껴 식료품비를 1.3% 절약했다. 살기가 팍팍해졌다.
특히 원래부터 '없던 이'들이 더욱 어려워졌다.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가구 소득(명목 기준)은 5.6% 감소했다. 반대로 소득 상위 20%(5분위) 가구 소득은 2.1% 증가했다. 소득 상위 20% 가구 소득(처분가능소득 기준)이 하위 20%의 몇 배가 되는지 따져보니 2014년까지만 해도 4.45배였던 게 올해는 4.48배로 높아졌다.
당장 돈을 써야 하는데 주머니에 돈은 없으니 마이너스통장이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하다. 회사원 C씨(35)는 "이직으로 인한 공백 탓에 한 달치 카드 값을 막지 못해 곤란했던 적이 있다"며 "당시 마이너스통장을 처음 알게 됐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이너스통장' 가계부채의 복병
실제 연간 마이너스통장 대출잔액 증감률을 보면 가계의 실질소득이 크게 감소했던 해 가장 많이 늘어났다. 7년 만에 가계 실질소득이 감소한 지난해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마이너스통장 둥 대출잔액은 174조2000억원으로 전년 161조2000억원에서 1년 사이 13조원(8.06%)이 급증했다.
반대로 가계 실질소득이 늘어날 경우 굳이 마이너스통장을 이용할 이유도 없다. 통계 역시 이를 증명한다. 지난 2014년 가계 실질소득 증감률은 2.1%를 기록하면서 그나마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이 기간 마이너스통장 등 대출잔액은 불과 1조9000억원(1.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만약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가계 실질소득이 회복되지 못한다면 이런 '생계형 마이너스통장'이 쌓이고 쌓여 이미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또 다른 복병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1344조3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약 13%가 마이너스통장 등 대출로 추산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마이너스통장이 꼭 생계형 부채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한 D씨(39)는 다른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얼마 전 그는 마이너스통장에서 3000만원을 대출받아 전세금을 올려줬다. 소유 중인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빌려도 되지만 이미 대출이 있어 이 방법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마이너스통장이 생계형을 넘어서면 정말 막다른 길에 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마이너스통장을 긴급생활자금 용도로만 쓰는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상환해야 할 주택용으로 활용하는 건 가계의 유동성에 상당한 제약요소"라고 말했다. 한편 가계 빚은 작년 말 현재 일인당 2613만원에 달한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장민권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