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퇴장한 황교안
2017.05.22 17:19
수정 : 2017.05.22 17:19기사원문
벌써 잊혀진 인물이 된 것 같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 7시간 행적 관련 기록의 대통령지정기록물 봉인 논란에 대해 "왜 제가 증거인멸을 하겠느냐. 법조인 출신은 불법을 고의적으로 저지를 수 없다"고 단언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 이야기다. 그는 법무장관에 이어 국무총리, 급기야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시국에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평탄치 않은 공직생활을 해야 했다.
상당 기간 보수진영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됐고, 때로는 당시 야당을 중심으로 '대통령 코스프레'를 한다느니, 박근혜정권 국정파탄 1급 공동책임자라느니 모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퇴장에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것은 처신의 때를 알고 그 길을 갔다는 점에서다. 그의 고백처럼 간단치 않은 역사의 한가운데서 무거운 중압감에 밤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날이 왜 많지 않았겠는가.
그는 자의였든 아니었든 보수진영에 마땅한 대선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상당한 지지율을 확보하며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 미증유의 경제난 속에 현장을 찾으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광폭 행보를 하는 게 아니냐는 등 그럴싸한 분석이 제기됐다. 그런 만큼 당시 야권의 견제와 압박의 강도 역시 높아갔다. 그러나 결국 대선후보로 출마하지 않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자 미련 없이 직을 내려놓은 채 국민의 한 사람이 됐다. 2015년 6월 18일 총리 취임 이후 694일(1년11개월) 만이다.
사실 황 전 총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공안검사다. 1983년 청주지검 검사로 첫발을 디딘 이래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28년간 검찰에 몸담으면서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 임수경씨 평양학생축전 참가사건,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옛 안기부 X파일 사건 등을 다뤘다. 법무장관 재임 때는 이석기 옛 통진당 의원 내란음모사건, 2012년 대선 국정원 댓글사건, 헌재의 옛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사건 등 공안사에 남을 사건이 그와 같이했다.
이 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기득권 체제를 수호하는 첨병인 것처럼 폄훼하고 더러는 박 전 대통령의 아바타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영광이 영광일 수 없는 시대 상황에서 격랑의 대한민국이 난파하지 않도록 국정의 중심을 잡고 고군분투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어떤 경우에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말고 긍정의 힘, 배려와 관용의 정신으로 함께 나가야 한다"는 말은 직을 내려놓은 '건강한' 공안검사 출신으로서 격변기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구가 아닐까 싶다.
doo@fnnews.com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