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 vs. 상트페테르부르크

      2017.06.15 17:11   수정 : 2017.06.15 17:11기사원문

지난 6월 초 러시아의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전 세계에서 1만명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리더들이 초청받아 모인 국제경제포럼에 다녀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러시아판 국제경제포럼, 이름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이 그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6월, 북부 러시아의 백야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토론과 비전 그리고 축제의 장으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매년 2월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는 순간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있다면 러시아판 국제경제포럼은 4개월의 시차를 두고 비로소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열린다. 전자가 혁신경제의 대표주자들이 달리는 퍼스트무버들의 축제라고 한다면 후자는 4개월의 시차만큼이나 숨차게 따라붙는 패스트팔로어들의 레이스였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구소련권의 중후장대 산업과 뿌리 깊은 기초과학이 서서히 융합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거대한 몸짓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선 공항 근처에 새로이 자리 잡은 거대한 행사장이 단연 압권이다. 아마도 500m쯤 되어 보이는 회랑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시장과 크고 작은 회의장은 유가하락으로 타격을 입고 늦게 출발한 러시아 혁신경제의 충전소 같은 느낌이었다. 1100여명의 스피커와 패널들이 세계경제의 역동성, 러시아 경제의 주요 이슈, 핵심적 인재개발 그리고 미래예측 분야에서 115개의 세션을 통해 1만여명의 청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거대한 포럼이었다. 규모로만 본다면 다보스포럼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미국, 일본, 인도, 아프리카, 중남미의 18개 국가와 러시아 간의 비즈니스다이얼로그 세션에서는 러시아 최고의 경제전략 책임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채널이 보장되고 있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북극권을 아우르는 러시아는 세계 부존자원의 최후 보루임과 동시에 북극항로를 장악하는 새로운 경제체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모름지기 우리는 두 개의 지구에 살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발로 딛고 있는 물리적 지구요, 다른 하나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사이버 지구다. 사이버 지구는 국경이 없으나 물리적 지구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세계 면적을 축구 경기장으로 가정했을 때 그 안에 놓인 침대 하나에 불과하다.

축구장의 30%를 차지하는 범러시아권은 우리에게 있어서 고갈되는 자원과 새로 열리는 북극항로를 통해 1980년대 중동과 같은 경제도약의 징검다리가 돼야 한다. 다행히 범러시아권에서는 디지털 준비지수 1위의 대한민국이 디지털 혁신경제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주제로 삼고 월드뱅크와 공동연구 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은 두 개의 세션에서 토론에 참여했던 필자 외에 단 한 명도 한국인 참석자가 없었다. 우리 언론에서조차 단 한 줄의 기사거리도 되지 못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푸틴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 대통령에게는 처음으로 취임 축하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 러시아특사단을 보내는 등 러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어느 정부보다도 러시아와의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더 나아가 새 정부의 북방외교 프레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이 갖는 의미가 포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