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건설 중단, 호텔서 도둑통과… 후폭풍 자초한 한수원
2017.07.14 17:54
수정 : 2017.07.14 17:54기사원문
한국수력원자력이 14일 경북 경주시내 한 호텔에서 기습 임시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을 의결했지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이날 이사회는 긴급한 의안이 있을 때 소집이 가능한 임시이사회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 결정이 '긴급'에 해당하는지와 '24시간 통지'를 지켰는지 여부가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요인이다.
한수원이 극심한 반발을 피하기 위해 '공'을 국무조정실 공론화위원회로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수원의 이사회 규정을 보면 이사회는 정기이사회와 임시이사회로 구분된다. 정기이사회는 매월 넷째 주간에 개최하는 것이 원칙이며 임시이사회는 긴급한 의안이 있을 때 소집하는 것으로 적시돼 있다.
한수원 이사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을 의결한 이날은 넷째 주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임시이사회다.
규정은 임시이사회의 경우 '긴급한 의안'이 있을 때 소집하는 것으로 돼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이 이사회 규정의 '긴급'에 해당하지 여부는 따져봐야 한다.
통상 정부의 긴급은 국가적 비상사태나 국민에게 상당한 인적.물적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일 때 사용한다. 또 시급한 정부 정책의 결정이 필요할 경우도 쓰인다.
예를 들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따른 여파, 여름철 전력수급 이상 현상, 가뭄 지원, 홍수 피해 등이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일환으로 지난 5월부터 추진돼왔다.
아울러 완전 중단까지는 향후 3개월간 공론화 작업을 거쳐야 하는 시간적 여유도 있다. 원전 사고나 방사능 누출 등 막대한 피해가 예상돼 일시중단을 결정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긴급' 혹은 '시급'과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한수원과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수원 노조, 울산 울주군 서생면 주민, 관련 중소기업의 반대는 외면한 채 지나치게 정부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한수원은 언론에 배포한 수차례의 자료에서도 "공기업으로서 정부의 협조 요청을 깊이 고려해야 할 입장"이라고 토로해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에너지법 4조를 근거로 "에너지 공급자인 한수원이 국가에너지 시책에 적극 협력할 포괄적 의무가 있다"며 "공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수원 이사회 규정은 아울러 '이사회 사무국장은 이사회 의장의 이사회 개최결정을 받아 개최예정일로부터 7일 전까지 전 임원에게 통지하는 것이 원칙이고, 긴급을 요하는 경우 24시간 전에 통지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번 임시이사회에서 이 규정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24시간 전 통지 규정을 만족하려면 한수원 이사회 사무국은 최소한 지난 13일 오전에 이미 '14일 오전에 경주 스위트호텔에서 임시이사회를 개최한다'는 통지를 이사들에게 해야 한다.
그러나 당초 한수원의 이사회 개최 시도는 13일 오후 3시에 이뤄졌다. 한수원은 이후 이사회 재개 논의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발표를 미루다가 14일 오전에 기습 개최했다.
따라서 한수원이 아예 이 같은 이사회 소집 규정을 지키지 않았거나 처음부터 14일 오전으로 이사회를 잡은 뒤 노조와 주민, 관련 중소기업, 언론 등을 속이기 위해 13일 오후에 이사회를 여는 것처럼 연기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대법원은 판례에서 "임시이사회 개최에서 적법한 소집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그 결과가 설사 만장일치로 된 결의라고 해도 당연히 무효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또 다른 판례는 "이사회를 소집할 때 적어도 회의 7일 전에 회의의 목적을 명시해 각 이사에게 통지해야 하고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이뤄진 이사회 결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고 판단했다.
한수원이 노조 등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국무조정실 공론화위원회로 공을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기업의 한계로 버티기 힘든 만큼 정부부처로 책임을 미뤘다는 것이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도 전날 노조, 주민과 대화에서 "정부 방침에 따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이 우리 기본입장"이라면서 "만약 공사를 중단하더라도 주민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겠다"고 말했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