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2017.10.23 17:15
수정 : 2017.10.23 17:15기사원문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종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남한산성'을 더 이상 극장에서 만나긴 어려울 듯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남한산성'을 단순한 역사소설로 한정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또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독해가 가능합니다. 영화와 소설은 적에게 포위돼 완전 고립된 남한산성을 그리면서 세상의 참혹함과 일상의 지엄함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혹함이란 유혈이 낭자한 살육과 고통, 죽음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그래서 치욕을 당하면서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저 도저한 현실을 가리킵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단 하나, 죽음뿐입니다.
조금 멀리 간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비유도 가능합니다.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칸(청태종)은 쉽사리 그 실체를 드러내진 않지만 나날이 강화돼가고만 있는 저 강고한 시장으로, 힘 좋게 생긴 용골대와 교활한 정명수는 그 시장을 움직이는 하수인으로 바꿔 읽을 수도 있습니다. 성 안의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척화(斥和)니 주화(主和)니 갑론을박하지만 칸의 홍이포가 벼락처럼 떨어지자 혼비백산하며 흩어지고 맙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은 삼전도에 끌려나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목격하면서, 좀 과장하자면 먹고사는 문제에 목이 매어있는 우리의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감히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줄곧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는데, 그나마 숨통을 터준 건 척화파 김상헌도, 주화파 최명길도 아니고 대장장이 서날쇠였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이념과 도덕보다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 하는 듯했는데, 그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바로 날쌔고 지혜로운 서날쇠였습니다. 소설과 영화의 끝을 대장장이 서날쇠가 장식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듯합니다. 칸의 군대가 본국으로 돌아간 후 생업의 현장인 대장간으로 돌아온 서날쇠의 건강한 모습과 화창한 봄날의 풍경은, 아마도 소설가 김훈이 말하고자 했던 그런 좋은 날이었을 것입니다.
jsm64@fnnews.com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