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과 감정평가 업계
2017.11.28 17:10
수정 : 2017.11.28 17:10기사원문
얼마전 영화 '남한산성'은 개봉과 동시에 정치인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시국과 관련해 아전인수식 말들을 쏟아내면서 많은 화제를 뿌렸다.
청의 황제 홍타이지는 "조선이 항복해 오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일찌감치 공언했다. 홍타이지의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신(儒臣)들은 논쟁만 일삼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남한산성에 얽힌 역사를 되짚다 보면 요즘 우리 감정평가사 업계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평가사들은 한국감정원이라는 기관과 꽤나 여러해 동안 다퉈왔다. 토지 평가와 관련된 자격은 1973년 토지평가사, 1977년 공인감정사로 이원화돼 있었다. 이후 1989년 '지가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로 두 자격은 통폐합돼 감정평가사로 일원화됐다. 공정경쟁체제를 기조로 정부출자기관인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법인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면서 지위가 크게 흔들렸고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민영화 대상기관 도마에 오르곤 했다.
위기에 쌓인 한국감정원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감정원법을 포함한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 냈다. 2016년 9월1일자로 시행된 소위 3법으로 불리는 그 법률을 감정평가사들은 지금까지도 반대하고 있다. 3법은 기존의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을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부동산 가격 공시법' '한국감정원법' 으로 분리해 감정평가업무를 민간에 이양하고, 감정평가사와 감정원의 갈등을 종식시킨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평가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업무를 평가사가 아닌 사람들도 할 수 있도록 허물어 평가사를 관리감독하는 기능까지 감정원 일반 직원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감정평가사들은 인조의 조정과 남한산성에서 출구 없는 말들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갑론을박만 벌였다. 이 기간 중 감정평가사 협회장이 두번이나 바뀌었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시간만 허비했다. 국가가 부여한 전문자격자인 감정평가사를 감정원의 일반 직원들이 대신하도록 만들어주고 만 꼴이다. 국가가 전문자격자를 두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좀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자격자인 감정평가사 자격제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이 받아야 할 질 높은 서비스 권한을 박탈당했음은 물론 감정평가사들이 고유업무를 빼앗긴 허탈함과 자괴감까지 든다.
남한산성을 거닐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감정평가업계도 여러 자격자들과 힘겨운 경쟁을 해나가야 할 지금 업계의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 영화 '남한산성'에서 그려진 조선의 신세처럼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순구 대화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