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남북정상회담, 이번엔 달라야
2018.04.26 17:19
수정 : 2018.04.26 17:19기사원문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로 남북한 간 접촉과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뒤이어 개최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단일팀의 경기, 예술단 상호방문, 특사 교환방문은 마침내 남북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게 되어 북핵문제와 한반도 분단 상황에 대한 해법이 도출될 수 있을지에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김정은이 대화의 손짓을 하고 나선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지난 25년간 정부는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되뇌어왔고 국민들은 정부의 말과 노력을 믿었지만, 결과는 핵무력 완성이라는 평양발 호언장담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허무하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도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때마다 무언가 될 듯이 포장되었고 우리는 교류와 협력의 이름하에 경제적 대가를 내주었다. 2008년 6월에는 세계 언론의 주목하에 영변 5㎿ 원자로 냉각탑이 폭파되는 장면까지 연출되었지만 결국 눈가림 쇼였음이 밝혀졌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미·소 간 핵군축 협상 중 남긴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는 정도로는 켜켜이 쌓인 북한에 대한 불신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믿지 말고 검증해야"한다. 평화가 일방적 선의나 희망적 사고만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 흰 종이에 까만 글씨로 평화를 적어봐야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평화는 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그 의지를 뒷받침하는 힘이 있을 때에만 보장 될 수 있다. 삼세번째 정상회의는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실패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회담의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북핵 폐기가 되어야 한다. 북한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가 전제되지 않은 한반도에서의 평화 논의는 모래 위에 집짓기일 뿐이다. 핵 있는 북한과의 평화는 유리잔과 같이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가짜 평화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북한은 노동당중앙위전원회의를 거쳐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 및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선언하고 경제와 핵 병진 노선을 가겠노라고 천명했다. 진일보한 입장이지만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전술적 노림수인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폐기를 위해서는 먼저 중단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북측은 그 발표에서도 핵폐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중단 상태의 고착화, 즉 현상의 동결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달성하고, 동결 후 이어지는 단계마다 상응한 대가를 요구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북한은 앞으로 중시하겠다는 경제노선을 위해 경제협력을 요구할 것이다. 핵폐기라는 초점이 흐려지면서, 매단계 교류와 협력이 이어지고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정작 핵폐기는 먼 장래의 도래 불확실한 빈 약속이 되고 마는 엉뚱한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 북핵폐기는 명백한 언어와 행동으로 약속되어야 하고, 여기에 따른 신고·사찰·검증의 로드맵이 분명히 제시되어야 한다. 한번의 만남으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끝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새로운 국면을 만들기 위한 시작으로 생각해야 한다. 핵폐기에 이르는 북측의 명확한 행동을 확인하기 전에는 교류·협력과 제재완화는 있을 수 없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실패했음을 과거에 뚜렷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