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그냥 올까마는…
2018.05.07 16:39
수정 : 2018.05.07 16:39기사원문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은 푸르다. 산야에는 온갖 꽃들이 다투듯이 피어난다.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한숨을 돌리려 망연히 앉아 있어도 찾아오는 행복감이 기꺼운 계절이다.
우리네 일상 곳곳에 들이닥친 봄은 이처럼 그저 안온감을 주다가 먹고살기 위해 치열하게 부대끼느라 잊고 있었던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아도, 설사 용기를 내 내닫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족할 그런 것이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사상 최초로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번영, 통일을 지향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두손을 맞잡았을 때 가슴에 뭉클한 무엇이 있었다. 핵 위협과 전쟁의 위기를 안고 수십년을 살아야 했던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은 당연했다.
그러나 대결과 적개심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한반도에서 어찌 봄이라고 쉽게 올 수 있을까. 남북 두 정상의 합의가 곧바로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세기의 담판 역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게 가장 큰 과제"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하는 데는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쯤은 상식에 속한다. 갈 길은 멀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마다 살얼음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라느니 '인권탄압의 장본인과 호화로운 만찬을 나누고 대통령이 앞장서 김정은 일가 미화에 공을 들인다'느니 내부를 향해 총질을 해댈 건 뭔가. 여기에 대응한답시고 '외계인'이니 '덜 떨어진 소리'라느니 '반대만 하는 못된 심보'라느니 말싸움을 확대하는 건 또 뭔지.
국민들은 안다. 한반도에 부는 훈풍을 6월 지방선거까지 연결시키고 싶은 쪽과 어떻게 하든 차단하고 싶은 쪽의 정치적 속셈 때문이라는 것을.
안도현은 소망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찾아오기 힘든 이 기회를 소중하게 다루고 가꿔서 평화의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이다. 어렵게 틔운 싹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어떤 위험이 예비돼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자면 역사의 전환기에 적극 참여하거나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어깃장으로 비치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한반도의 봄을 독점한 양 다른 견해를 짓누르는 따위가 얼마나 볼썽사나운 일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 봄이 가기 전에.
doo@fnnews.com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