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알레르기?...하루하루 서러운 알레르기 환자들

      2018.07.14 11:01   수정 : 2018.07.14 11:01기사원문

#. 직장인 김한철(34·가명)씨는 요즘 어딜 가나 천덕꾸러기 신세다. 환절기 때마다 찾아오는 '알레르기 비염' 증상에 직장동료는 "설마 감기처럼 옮기는 것은 아니죠?"라는 의심 어린 질문도 한다. 퇴근 후 집에 와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집 안이 너무 더워 에어컨을 틀면 재채기·콧물·두통 3종 세트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에게 뽀뽀하고 싶지만 "혹시 모르니까 애들한테서 좀 떨어져"라는 부인의 말에 이내 머쓱해진다.

알레르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내 알레르기 환자 발생률은 1980년대 초반 약 5%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약 15%로 증가하더니 2000년대에는 20% 이상으로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알레르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49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레르기는 면역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두드러기, 가려움, 콧물, 기침 등의 이상 과민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1906년 오스트리아 빈의 소아청소년과학자 클레멘스 폰 피르케가 그의 환자들 가운데 몇 명이 먼지, 꽃가루, 특정 음식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알레르기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원인은?

알레르기는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해 발생한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서는 특정 돌연변이가 흔하게 발생한다. 알레르기 항원에 대해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식단, 집먼지 진드기, 곰팡이 등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알레르기가 생기기도 한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은 알레르겐 또는 항원이라고 말한다. 꽃가루나 항생제가 이에 해당한다. 몸에 항원이 들어오면 항체가 만들어지고 항원항체반응이 생기는데 이를 알레르기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알레르기에는 꽤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알레르기 비염, 식품 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 한냉 알레르기 등이 그 예다.

식품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대학생 조아영(26·가명)씨는 유독 '오이'에 민감하다. 오이가 들어간 음식만 먹으면 피부가 가렵고 열이 오른다.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 위에 오이를 반드시 빼달라고 말하고, 분식집에 가면 좋아하는 김밥 속 오이를 빼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까탈스럽다"고 말하며 편식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못 먹는 것도 먹어야 어른'이라는 이상한 논리까지 펼친다.

지난 2013년에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초등학생 A군이 학교 급식에서 우유가 든 카레를 먹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교육부는 학교 급식에서 알레르기 유발 식품 공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급식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최근 3년간(2015~2017년)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식품 알레르기 관련 위해사고는 총 1853건이었다. 특히 4건 중 1건은 '10세 미만' 영유아·어린이 안전사고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소비자원의 한 관계자는 "부모 이외 돌봄교사나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어린이도 알레르기 정보를 쉽게 확인하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알레르기에 대한 '무지'.. 환자를 더 아프게 만든다

무엇보다 알레르기 환자를 속상하게 만드는 것은 알레르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태도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직장인 이수훈(34·가명)씨는 여름철 뜨거운 날씨 탓에 피부에 두드러기가 나고 가려움증이 있어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는 "직장 상사가 약 먹는 것을 보더니 햇빛 알레르기라는 것을 처음 들어본다"면서 "남자답지 못하게 햇빛에 진거냐고 말해 많이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주부 김모씨(42)는 "아이가 첨가물 알레르기가 있어 학교에 식단표대로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있다"며 "맘카페에서 이런 속사정을 털어놓자 '아픈 애는 집에서 관리해라', '부모가 온전히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공격을 받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알레르기 증상에 대해 대부분 '경미하다'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로 눈물, 가려움, 콧물, 재채기 등의 증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레르기 증상의 일종인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나타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기도가 좁아지면서 후두와 기도 내막이 부어올라 호흡을 방해할 수 있다. 혈관이 팽창해 혈압이 위험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알레르기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항원이 될 수 있는 물질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항체 주사를 맞으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줄이는 면역 치료법도 있지만,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고 비용도 비교적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인구의 약 36%가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일본의 경우, 알레르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식품을 만들고 있다.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최상의 대책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식품을 피하는 것인데 영양 측면에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알레르기 항원이 적게 들어간 품종을 육성하고, 가열·가압 및 염수처리 등을 통해 물리화학적인 방법으로 식품을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핀란드는 2008년부터 알레르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알레르기를 회피하는 것보다 알레르기 유발 인자에 대한 면역력 자체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질환이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진행되기 전에 조기 진단 및 치료의 중요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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