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가 무슨 죄가 있다고
2018.08.28 16:58
수정 : 2018.08.28 16:58기사원문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과 소득분배가 나빠지자 불똥이 통계청으로 튀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갑자기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통상 재임기간이 2년 안팎인 자리였는데 13개월 만에 바꿨다.
황수경 전 청장의 이임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것이 국민 신뢰를 얻는 올바른 길이다"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 통계는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1년 전보다 각각 8%, 7.6% 급감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발표가 나온 뒤 황 전 청장은 조사대상 표본 수가 늘어난 점을 적극 홍보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조사를 잘못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인구 상황에 맞는 데이터를 뽑으려 표본 수를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40% 이상 대폭 늘린 것은 누가 봐도 잘한 일이다. 표본 수를 늘리면 통계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가뜩이나 이 통계는 올해 없애려다 여당이 소득주도성장 홍보용으로 존속시켰다. 제 발목을 잡은 여당이 애꿎은 통계청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임 통계청장은 한술 더 떴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2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 "장관님들의 정책에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강 청장은 청와대가 지난 5월 1·4분기 소득분배 지표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밝혀 문제가 됐을 당시 해당 자료를 제출한 인물이다. 정권 맞춤형 통계가 양산될 것이란 우려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결국 이번 통계청장의 급작스러운 경질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잘못 끼운 첫 단추에서 시작한다. 주52시간 근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과 근무시간 단축 등 제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문제는 속도다. 업종과 지역을 막론하고 2년 새 29% 인상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지난봄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다.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잘못 끼운 첫 단추의 후폭풍은 거세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대부분의 경제지표는 10년 만에 최악이다. 미국 증시는 9년 넘게 고공비행 중인데 한국 증시는 청산가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푸대접을 받는다. 80%를 웃돌던 문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로 곤두박질친 이유다.
통계는 모든 정부 정책의 기초가 된다. 통계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통계청장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책을 폐기할 수 없다면 속도조절이라도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4분의 1이 지났다. 시간이 많지 않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자본시장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