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세수 전망과 재정 건전성
2018.09.02 16:42
수정 : 2018.09.02 21:07기사원문
정부가 470조5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보다 38조원가량 늘렸다. 내년 경상성장률을 4.4%로 보는데, 예산은 이보다 2배가량 많은 9.7% 증액했다.
정부 말이 맞다고 전제한다고 해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다름 아닌 정부가 비밀리에 작성하고 있는 세금수입(세수) 추계에 관한 것이다. 정부는 예산을 향후 5년간 연평균 7.3%씩 늘릴 계획이다. 2018~2022년 국가재정계획에 따른 것이다. 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팽창 일변도의 이 같은 재정지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은 세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세금이 더 걷히고 있어서 씀씀이에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23조원, 올 상반기에만 19조원의 세금이 추계보다 더 걷혔다. 내년 세수도 호황일 것이란 게 정부의 장담이다. 올해 반도체 호황 지속, 올해 법인.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내년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이 세수 증대를 이끌 요인들로 꼽힌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재정운용계획상 5년 동안 세수가 당초 계획보다 60조원 이상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만약 정부 예측대로 세수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을 때다. 당연히 나라 곳간에 들어오는 세금보다 많은 예산을 써야 하니 국가재정 건전성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부족한 돈은 국채를 발행해 메워야 하기 때문에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빚으로 남는다. 지출, 즉 예산을 계획보다 줄이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택하기는 힘들다. 늘어나는 예산지출의 상당 부분이 복지예산 등 의무지출이어서 임의로 줄일 수 없다. 의무지출은 공적연금, 건강보험, 지방교부세 등 법률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다. 한번 잡히면 줄일 수 없는 예산인 셈이다.
나라 곳간이 비면서 '재정절벽'에 직면하지 않게 우선 세수 추계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세금 수입 규모가 정부뿐만 아니라 전문가 집단까지 참여한 가운데 산정되면 예산은 국가재정 건전성을 담보하는 수준에서 작성할 수 있다. 오차도 줄일 수 있다. 현재 세수 추계는 전적으로 기획재정부 세제실 몫이다. 세제실은 경제성장률 등 각종 지표와 전망을 종합해 수치를 집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종 수치만 내놓는다. 전망과 실적치의 오차도 크다. 2016년 세수전망 오차율은 8.1%였다. 지난해는 9.5%였다. 올해 역시 1.4분기 국세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9조원가량 더 걷혔다.
세수 추계 방법을 공개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이 개정되면 현재 정부 예산안 공개 후 불붙는 '국가 살림살이' 논쟁이 세수 추계 때부터 시작될 여지가 있다. 세입 전망과 예산 규모를 정하는 과정은 정치적 영역이어서 국회의 개입 폭도 한층 더 확대될 수 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27개국이 세입 추계방법을 공개하고 있다는 부분도 주목한다. 국가채무 총량관리와 무분별한 재정지출 확대를 막기 위해서다. 2020년 예산 500조원 시대를 맞는다. 국가재정의 지속성, 건전성을 다각도로 고민할 때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