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마이너스 진입, 디플레 경각심 높여야
2019.09.03 17:20
수정 : 2019.09.03 17:20기사원문
디플레란 수요부족으로 물가하락과 경기침체가 수년에 걸쳐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가 '물가 하락→고용 감소→마이너스 성장→총수요 위축'의 악순환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깊은 함정처럼 한번 빠지면 헤쳐 나오기가 어려운 특성을 지닌다. 디플레가 닥치면 그 나라 경제는 거덜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디플레에는 보통 '공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8월 한 달 물가만을 근거로 디플레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한은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내역을 보면 그렇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농축수산물(-7.3%)과 석유류(-6.6%)가 큰 폭으로 떨어진 탓이 크다. 농축수산물은 가뭄으로 지난해 가격이 폭등했고, 석유류는 경기활성화를 위한 유류세 한시인하로 올해 낮아졌다. 디플레는 수요위축과 지속성이라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될 때 나타난다. 이 점을 감안하면 8월의 마이너스 물가는 일시적 현상일 개연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디플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은은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하락이 없었다면 8월 물가가 1%대 중반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실현되지 않은 가정을 전제로 정책을 논하는 것이어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정부와 한은은 53년 만에 마이너스 물가가 나타난 현실을 좀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2~3개월 안에 플러스 물가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누구도 미래는 알 수 없다.
디플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R(경기침체)의 공포'가 부쩍 늘어나는 게 작금의 상황"이라고 했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부 유로존 국가의 포퓰리즘 정책, 일부 신흥국 금융위기 등 악재가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겹쳐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경제가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도록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디플레 공포감을 불어넣을 이유는 없지만 안이한 대응을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