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시대가 저문다고? 착각에서 벗어나라
2019.09.18 17:14
수정 : 2019.09.18 17:14기사원문
한국은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279만 3000배럴. 2016년 기준 한국에서 하루 평균 소비된 석유의 양이다. '석유' 하면 보통 휘발유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이 많은 소비량의 상당 부분이 운송 수단의 연료로 사용됐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운송에 사용된 석유는 32.6% 정도이고, 절반이 넘는 52.8%는 플라스틱, 고무, 화학섬유 등을 만드는 석유화학 산업에서 쓰인다.
석유 공급이 중단되면 운송 뿐 아니라 소비재 상당 부분이 생산을 멈추기 때문에 석유가 현대인의 경제 행위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의 중요성은 단지 개인의 경제적 삶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4차례의 중동 전쟁, 진주만 공습, 9·11 테러,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 현대사의 수많은 전쟁과 테러가 석유 때문에 벌어졌다.
석유가 단순한 연료나 원료 정도가 아니라 국제정치와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인이기 때문에 보통 현대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석유를 꼽을 수 있다. 현대사에서 석유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고 석유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를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석유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당분간 석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산유국의 이익이 한국의 이익과 긴밀히 연결되도록 유지하는 방향을 제안한다. 이 역시 석유의 역사 속에서 나오는 방안 중 하나다.
200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스끄지가 피살되면서 미국이 사우디를 제재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우디는 현재 에쓰 오일 지분의 63.4%를 확보해 최대 주주이고 현대오일뱅크의 지분도 17% 매입했다. 이는 사우디가 점유율의 확보, 즉 석유를 팔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저자는 이런 상호의존 관계를 한국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그럴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바다에서 석유 탐사에 성공했는데 이는 광권 계약 체결부터 탐사 활동, 가스전 발견 및 개발 그리고 석유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국 인력이 주도했다.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상황은 분명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석유의 역사를 잘 살핀다면 문제 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길은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지금까지 석유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한 경험을 쌓아놓고 있다. 조심할 것이 있다면 석유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착각과 함께 이같은 경험을 등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석유가 전 시대의 유물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명백한 트렌드이고 최소 한 세대의 범위 안에서는 미래의 비전이라고 지적한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