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새 계산법' 진통…文대통령 돌파구 마련 고심

      2019.10.07 16:42   수정 : 2019.10.07 16:42기사원문
【서울=뉴시스】 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10.07.since1999@newsis.com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북미가 7개월만에 어렵게 성사된 실무협상에서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둘러싼 인식의 간극만 확인한 채 돌아서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고심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비핵화 불씨가 완전히 꺼지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실무협상이 장기 표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우려 섞인 인식이 청와대 안팎에서 감지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7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스톡홀름 상황을) 무겁게 보고 있고, 북미 실무협상의 (후속)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속단하기는 힘들다. 이제 막 대화가 시작된 만큼 대화 동력이 유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가 실무협상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경우, 그 수준과 방향성 위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타진해 볼 수 있다는 게 당초 청와대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이 제자리 걸음을 걸으면서 다시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제한적"이라며 "우선은 북미 실무협상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와야 그 속에서 비핵화 대화 동력 유지를 위한 우리의 역할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간 실무협상에서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 의제 등 구체적인 방향성에 접점을 우선 찾아야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할 수 있는 우리만의 역할도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많은 부분에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청와대가 먼저 움직일 수 없다는 신중함도 함께 읽힌다.

앞서 북미는 지난 4일부터 이틀 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예비접촉에 이은 실무협상을 가졌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돌아섰다.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북미 대표로 실무협상을 벌였지만 추가 협상 날짜도 잡지 못한 채 헤어졌다.

미국 국무부는 2주 이내에 실무협상을 재개하는 내용으로 북미 양측을 초청했다는 스웨덴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추가 실무협상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반면 북한은 짧은 시간 내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올리 만무하다며 연내 협상 가능성 정도만 열어뒀다.

외교 전문가들은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실무협상 종료 30분 만에 협상 결렬을 선언한 표면적인 상황에 주목한다. 이례적으로 입장이 빨리 나왔다는 것과 북미 간 협상 후 온도차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준비된 결렬이 아니었겠냐는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북한의 이례적인 결렬 선언 배경과 관련해 "북한은 최소 기준치가 아니면 결렬을 발표하겠다고 작심하고 나온 것 같다"면서 "'하노이 노딜'에 대한 복수도 겸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스톡홀름=AP/뉴시스】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북한 대사관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2019.10.06.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선언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적인 수모를 감당해야 했던 부분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실무협상의 결렬을 준비하고 왔을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도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북한 입장의)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굉장히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30분 만에 나올 수 없는 것들"이라며 "(북한이) 결렬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일종의 계산된 결렬"이라고 했다.

미국의 비핵화 셈법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 바꾸지 않을 경우 협상을 할 수 없다는 경고성 메시지와 하노이 망신에 대한 복수의 성격도 담겨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결렬에 대한 사전 동기 부여가 돼 있었다는 표면적인 분석 외에 북미 서로 간에 치열한 탐색전 끝에 결렬됐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각자가 원하는 패를 맞추는 과정에서 북한이 미리 정하고 들어온 기준보다 간극이 큰 것을 확인하자 접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엽 교수는 "실제로 미국이 새로운 카드 없이 협상장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 합의 이행에만 얽매였던 것 같다"면서 "거기에 북한에 플러스 알파를 요구하니, 북한 역시 미국의 상응조치로 플러스 알파를 새롭게 요구하는 이른바 '알파 딜(deal)' 을 시도하다 무산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 선언 1·2조에서 다루고 있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평화선언 또는 종전선언 협의 개시) 이행에 충실하겠다는 것이 미국이 내민 카드였을 수 있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로는 영변 핵 폐기에 플러스 알파(+ α)로 모든 핵프로그램 동결을 요구했을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북한은 영변 폐기의 상응조치로 체제보장 방안을 요구함과 동시에 미국과 동일한 플러스 알파(+ α)로 민수경제를 위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해제를 요구하며 협상 조건을 동일하게 맞추려다 미국의 반대로 결렬된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싱가포르 회담 합의 정신의 유효성을 재확인 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방안에 포커스를 맞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북한 외무성 김명길 순회대사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5일 오전 10시(현지시간)께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리딩고 섬에 있는 컨퍼런스 시설인 빌레 엘비크 스트란드(Villa Elfvik Strand)에서 비핵화 실무협상에 돌입했다. (사진출처: NHK 화면 캡처)
제재완화 대신 하노이 회담에서 상당한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진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방안을 체제안전 보장 방안의 중심으로 하되,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 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지속적인 유예 방안도 하나의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됐었다.

이럴 경우 문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 된다. 문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이끌어 냈고, 그 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는 성과를 확인한 바 있다.

다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던 2년 전 상황과 달리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먼저 연합군사 훈련 중단을 밀어붙일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에 제시할 비핵화 상응조치가 마땅치 않은 미국이 체제보장의 일환으로 한미 연합훈련의 지속적인 중단 방안을 먼저 고려하고 있을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문 대통령 입장으로서는 오히려 중재 내지는 촉진할 수 있는 역할에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석탄, 섬유 수출 제재를 36개월간 유예하는 방안을 마련했다는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VOX)의 보도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론을 찾기도 한다. 미국의 선제적인 제재 완화 분위기의 틈을 활용해 남북관계 개선방안을 추진할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은 지난 4일 10·4 선언 12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미국 복스의 보도를 언급하며 "그게 시작되면 우리로서는 개성공단·금강산 재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며 "지금도 문 대통령이 용기를 갖고 일을 벌릴 수 있도록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개성공단 문제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와 연계시켜서 북미 협상 과정 속에 집어 넣고 풀려고 한다면 풀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결단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문 대통령과 정부가 결단해야만 우리가 북한에 대해 '말발'이 생긴다"고 했다.

kyustar@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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