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 구성…시위대 반발은 여전

      2020.01.22 12:02   수정 : 2020.01.22 12:02기사원문
[베이루트=AP/뉴시스]'무당파 기술관료(technocrats)'로 분류되는 하산 디아브 전 교육부 장관이 이끄는 레바논 새 정부가 21일(현지시간) 출범했다. 사진은 이날 베이루트에 위치한 대통령궁에서 연설하고 있는 디아브. 2020.01.22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무당파 기술관료(technocrats)'로 분류되는 하산 디아브 전 교육부 장관이 이끄는 레바논 새 정부가 21일(현지시간) 출범했다. 경제난과 부패, 공공 서비스 악화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에 책임을 지고 사드 하리리 당시 총리가 지난해 10월29일 사퇴를 선언한지 대략 3개월만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BBC,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그는 이날 대통령궁에서 장관 인선을 발표한 뒤 "3개월 이상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나온 요구를 대변하는 정부"라면서 "정부는 독립된 사법부, 횡령된 자금의 회수, 불법적 수익과의 싸움에서 시위대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이번 정부는 정실주의와 청탁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정부 구성원 누구도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정부는 정치적 논쟁의 영향을 받지 않는 비당파적 인물로 구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레바논에서 몇 안 되는 무당파 기술관료로 꼽히는 디아브는 지난달 19일 레바논 의회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와 그 동맹세력의 지지를 얻어 총리에 지명됐다.

디아브는 이날 국회 자문역을 역임한 경제학자 가지 와즈니를 재무장관에 임명하는 등 장관 20명(여성 6명 포함)을 기술관료 중심으로 인선했다. 장관 숫자도 전임 정부 대비 3분의 2 수준으로 줄였다.

내전 이후 종교 세력간 균형을 위해 도입됐지만 정치 엘리트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이른바 '종파간 공직 할당제'를 중단하고 경제와 금융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관료 위주로 정부를 구성하라는 시위대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한 것이다.

디아브는 새 정부를 구조대라고 언급하면서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경제 상황에 대한 대응은 신속하되 성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400만명의 소국인 레바논은 1975년~1990년 내전의 후유증이 수습되지 않는 상황에서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로 150만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이 유입되면서 극심한 어려움을 격고 있다. 레바논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50%에 달한다.

[베이루트=AP/뉴시스] 새로운 정부에 반대하는 레바논 반정부시위가 22일(현지시간) 베이루트 국회의사장 인근에서 시위 도중 물대포를 피하기 위해 나무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특히 레바논 정부가 지난해 10월17일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과 담배, 휘발유 등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수개월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면서 금융과 산업 체계가 무너져 채무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레바논은 미국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디아브는 당장 오는 3월 만기가 도래하는 12억 유로 규모 외화표시 채무의 만기 연장을 이끌어내야 하는 숙제를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아 총리가 된 디아브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에게 지지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헤즈볼라 영향력 억제를 위해 레바논에 대한 안보 지원을 중단한 바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베이루트 주재 미 대사관 관계자는 내각 발표에 앞서 WSJ에 "실질적인 개혁을 할 수 있는 정부만이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레바논에 대한 국제원조를 끌어낼 수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외신은 새 정부 출범에도 반정부 시위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디아브가 무당파 기술관료로 꼽히기는 하지만 그와 그의 장관들은 시위대가 퇴출을 요구한 정치 기득권들의 지지를 얻어 임명됐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WSJ는 현지 전문가를 인용해 "시위대가 무너뜨린 전통 정당들이 (이번 정부를) 만들었다"며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운영방식은 똑같다. 안 좋은 징조"라고 지적했다.


AP통신과 알자지라는 새로운 정부 구성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베이루트 거리로 몰려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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