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영웅들에게 왕관을
2020.02.05 16:51
수정 : 2020.02.05 20:15기사원문
항거불능의 악마적 사태로 보아 주술에 의존하거나 소극적으로 도피했던 옛날과 달리, 오늘의 인류는 과학으로 중무장해서 상태가 조금은 낫다. 그렇지만 인간 자체가 태생적으로 심리적 불안이 내재되어 고통과 공포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인류가 존속해온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인지의 발전과 더불어 위기극복에 앞장서는 영웅이 때마다 탄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 영웅학이 말하는 영웅은 자발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희생해 보편적 규범을 실천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을 말한다. 일본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취객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고 이수현씨의 미담처럼 극적인 사건이 있는가 하면, 크림전쟁에서 국적에 관계없이 젊은 군인들을 희생적으로 구호한 나이팅게일과 같은 직업적 영웅도 있다.
이 순간 시민들이 느끼는 공중보건 위험은 심각하지만, 마스크와 손씻기 등을 통해 대부분 예방가능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거나 수송하는 의료진이나 소방관, 경찰관들이 느끼는 위험은 보통사람에 비할 바 아니다. 감염환자의 피와 체액이 난무하는 속에서 바이러스가 의사나 간호사라고 비켜갈 리 없으니 말 그대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인명을 구호하는 셈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한림대 병원에는 의료진 95명이 환자 36명과 함께 격리돼 있었다. 김현아 간호사가 보낸 '메르스 간호사의 편지'에는 목숨을 걸고 치료에 임하면서 오히려 격리대상자라고 외면받고 그러고도 사망한 환자에게 "낫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사투를 벌이던 역사가 생생했다.
며칠 전 중국 우한시에 봉쇄됐던 교민 700여명을 고생 끝에 귀국시킨 후 가히 사지라 할 수 있는 현지 총영사관에는 정다운 경찰 영사를 비롯한 9명 외교부 직원들이 남아 잔류교민을 지원하고 있단다. 가장을 뒤로 한 채 귀국길에 오른 가족들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눈물을 훔치며 묵묵히 병마와 싸우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으랴. 그 희생과 기여는 '직업'이라는 단순한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숭고하고 위대하며, 이분들 덕에 내가 숨 쉰다. 영웅들의 머리 위에 진짜 코로나 왕관이 빛나기를 기원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