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레이션화와 코로나 정치

      2020.03.16 16:59   수정 : 2020.03.16 16:59기사원문
50일 넘게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와 사회 전반이 멈춰버렸지만 정치는 활발하다.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으로 방역에 대한 정치적 간여도 심한 편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미디어에 빈번하게 등장해 이 시국을 정치적 인기를 얻는 기회로 삼는 낯 뜨거운 장면이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누적되고 있는 국민의 피로감과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기만을 좇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바로 정치의 셀러브레이션화 때문이다. 사회학자 조슈아 겜슨에 의하면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연예인의 대화 방법이나 발표 기술을 배우는 것을 셀러브레이션화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셀러브리티로 불리는 스타들을 키우기 위해 이를 기업화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정치도 정당 차원에서 정치 스타를 키우기 위한 미디어 작업에 나서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정치의 셀러브레이션화는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즉 셀러브리티를 중심으로 사회를 통합시키는 문화와 규범으로서 순기능이 있는 반면, 사회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분열 양상이 가열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후자의 역기능만이 주로 관찰되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셀러브리티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에서 불가피하게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 이유는 경제·사회의 발달로 왕의 절대권력이 사라지고 종교의 힘이 약화됨에 따라 대중의 심리적 결핍을 채워주는 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문제의식이나 분노, 그리고 가슴 아픈 경험 등으로 응어리 진 대중의 삶에 정체성과 소속감은 물론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양 극단의 정치편향 집단들이 각 진영의 스타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지치지 않고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연예계에서는 셀러브리티를 중심으로 집단화하는 팬덤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K팝의 세계적 경쟁력도 이 팬덤의 순기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셀러브리티에는 세 종류가 있다. 왕실 가족과 같은 태생적 셀러브리티, 손흥민 선수와 같이 자신의 능력에 기반한 성취형 셀러브리티, 그리고 미디어에 노출돼 유명해진 미디어형 셀러브리티가 그것이다. 정치의 셀러브리티화는 거의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 어쩌다 유명세를 탄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부동산 기업가 트럼프는 어프렌티스라는 TV리얼리티 쇼의 진행을 통해 셀러브리티화에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많은 정치인들로 하여금 셀러브레이션화 과정에 참여하도록 동기부여한다. 한국의 경우도 대선 과정에서 미디어의 중심에 선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인 동시에 셀러브리티 지위를 갖게 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비호감' 정치인으로 꼽혔던 유시민 이사장도 미디어를 통해 인기를 얻으며 셀러브레이션화에 성공했다. 코로나 정국을 둘러싸고 많은 정치인들이 인기영합에 나서는 것도 '다 계획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것은 셀러브리티는 라틴어 어원(celere)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속하게 형성됐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영웅은 큰 인물이지만 유명인사는 큰 이름일 뿐이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 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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