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배상 논쟁의 겉과 속

      2020.04.12 17:11   수정 : 2020.04.12 17:11기사원문
전쟁의 역사는 항상 배상의 외교로 직결된다. 자국 내 갈등을 모면하기 위해 전쟁을 계획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전승국의 손해배상 명세서가 첨부된다.

참혹한 인류의 살상은 뒷전이고 결국 배상을 둘러싼 자본의 논리가 득세한다. 이게 전쟁의 이치라는 점은 세계대전 등 모든 전쟁에서 드러났다.

코로나19 사태는 살상무기를 동원해 국경을 넘어 침략하는 전통적인 전쟁과 다르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을 들여다보면 분명 배상 문제로 넘어갈 징후들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코로나19 초기 확산 과정에서 발생 진원지를 놓고 중국과 미국 간 첨예한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진원지 논쟁은 패권경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세계 패권국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서방 패권국들이 중국 책임을 부각시킨다는 게 중국 내 반응이다. 반면 서방에선 중국의 진지한 사과가 없다는 점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위기에 공감하고 공동 대처를 해도 모자랄 판에 네탓 공방에 매몰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발생의 진원지를 확실하게 못박는 게 인류공동체에 유의미한 실익을 가져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 이어 호주와 인도 등으로 중국을 상대로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막대한 국가경제의 피해가 발생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잡히더라도 민간 영역에서 복잡다단한 집단소송의 후폭풍이 몰아칠 조짐이다. 코로나19 불길이 잡히더라도 앞으로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이 예고돼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 수준의 갈등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진원지 공방이 낳을 폐해는 대략 몇 가지로 예측해볼 수 있다. 당장 각국 집권당 입장에선 코로나19 사태로 악화된 국내 여론를 잠재우기 위해 외부에 책임 소재를 돌릴 명분이 필요하다. 중국 우한에서 최초 집단적 발병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중국이 좋은 타깃이 되는 이유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초기에 안이한 방역대책으로 화를 키웠던 각국 정부들이 내부 여론을 무마시키는 자국 정치용으로 진원지 논쟁을 키우는 게 엿보인다.

나아가 중장기적으로 세계 패권국으로 거듭나려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소재로 둔갑할 수도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서방과 중국 간 대립각이 형성된 데 이어 코로나19를 계기로 확실한 신냉전 질서를 구축할 명분이 생겼다.

아울러 배상의 책임은 물리력을 동원한 전쟁이 아닌 질병의 확산이라는 점과 느슨한 국제법적 성격상 지루한 공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이번 진원지 논쟁이 두 집단에 대해선 분명히 엄청난 타격을 남길 전망이다. 강대국들 간 사죄와 배상의 공방은 언제나 약자의 고통만 증폭시킨다는 점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직면할 때 피해의 강도는 일반 서민이 더욱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가별, 계층별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우려가 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인종 차별도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이미 중국인을 향한 백인들의 혐오 행위가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인에 대한 서방의 혐오는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적 편견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패권이라는 프레임으로 덧씌워진 코로나19 책임 공방으로 인류의 균열이라는 아픈 역사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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