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진짜 문제는 서비스다

      2020.04.28 17:09   수정 : 2020.04.28 17:09기사원문
"뭘 만들어서 보여줘야 어떤 규제를 풀면 되는지, 어떤 법을 바꾸면 되는지 생각해볼 텐데 여전히 계획서만 들고 와 모든 것 다 하도록 풀어달라고만 하니 우리도 참 답답합니다." 알고 지내던 고위 공무원이 블록체인 기사 쓴다는 내게 핀잔 섞어 던진 말이다.

파이낸셜뉴스가 블록체인 기술·산업과 함께 성장하겠다며 블록포스트 섹션을 별도로 설치한 지 만 2년이 됐다.

처음 블록체인 기술을 소개받았을 때 신났다. 기술은 민주적이었고, 산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의 주권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업계 사람들은 젊었고, 열정이 넘쳤다.


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기술은 민주적이지만 내 주권을 지켜줄 것 같은 산업은 아직 자라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젊지만 열정이 있던 자리에 피해의식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0년 블록체인 산업은 딱히 코로나19 때문이 아닌데도 돈이 안 돌고, 새로운 사업기회도 찾기 어려워 참 어렵다.

2018년 일반인이 블록체인 기술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가상자산 투기가 먼저 뇌리에 박혀버렸다.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은 일확천금을 바랐고,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투기라며 손가락질했다. 결국 정부는 가상자산을 금칙어로 정했다. 가상자산이 관계되는 모든 것은 금지 대상이 됐다. 참 사업하기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니 블록체인 업계 사람들이 모이면 규제 탓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 규제 탓은 2년 내 제자리, 같은 말 반복이다.

그래서 직접 사업하지 않는 주변인 주제에 눈총 맞을 만한 입바른 소리 한마디 하고 넘어갔으면 싶다. 블록체인·가상자산 산업이 어려운 게 정말 규제 탓만인지 사업하는 사람들이 한번쯤 자문해 줬으면 한다.

제대로 된 상품은 만들었는가. 2년이 길지 않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사용자의 구미를 당기는 쉽고, 재미있고, 자꾸 쓰고 싶어지는 서비스를 내놨는가. 왜 소비자로서 블록체인 하면 비트코인 투기 말고는 딱히 떠올릴 단어가 없는가.

블록체인 사업하는 사람들이 소비자와 시장을 머리와 가슴속에 두고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승부했는지 신중하게 묻고 싶다. 억척스럽게 정부 탓 하면서 힘을 낭비한 것은 아닌지, 혹시 능력있는 기술자로서 기술 자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닌지도.

시장과 산업은 소비자가 만든다.
규제 탓도 하고, 정부도 바꿔야 하지만 블록체인 산업계가 정말 억척스럽게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소비자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거 편하고 재밌어, 한번 써봐." 옆자리 동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2020년 블록체인 업계가 가장 치열하게 고민할 주제 아닌가 싶다.
진짜 문제는 정부도, 규제도 아닌 서비스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체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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