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액은 들쭉날쭉, 이해충돌은 빠져… '반쪽' 김영란법

      2020.10.04 17:30   수정 : 2020.10.04 18:22기사원문
2016년 9월 28일 처음 도입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 5년을 맞아 정체성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경제위기 때마다 내수진작 차원에서 한시적 상향기준을 완화하는 조치가 잇따르면서 아예 기준가액 자체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제기되고 있다. 최근 건설사 대표를 지낸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의 대규모 관급공사 수주 의혹을 계기로 김영란법 제정 당시 '이해충돌방지법'이 빠졌던 맹점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경제위기마다 '고무줄 기준' 논란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8월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일반국민 87.8%가 김영란법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조사대상자 다수가 청탁금지법 시행이 정상적 사회생활이나 업무 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며 "특히 인맥을 통한 부탁·요청이나 직무 관련자와의 식사·선물·경조사비가 감소하는 등 부패예방 체감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가액기준이 경제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바뀐다는 점이다.


김영란법은 지난 10일 권익위가 추석 기간에 한해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기준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한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보고 있는 농·축산·어민에게 활로를 만들어주자는 취지였지만 들쭉날쭉 바뀌는 가액기준이 자칫 '고무줄행정'으로 빠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김영란법 발효 4개월 만인 지난 2018년 1월 선물가액 기준을 바꾼 바 있다. 농축수산물에 한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하고,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축소했다. 더구나 올해 코로나19가 닥치자 정부는 경기진작 차원에서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4일 사이 농수산물의 가액기준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했다.

가액기준 변경은 도입 때마다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농수산물 선물 가액기준이 10만원으로 상향된 2018년 설과 추석 때 농축산 선물세트 판매량은 전년동기 대비 각각 17.4%, 4.2% 증가했다. 이번 추석에서도 지난해 추석 연휴 종료일 이전 20일간 거래실적보다 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경제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가액기준에 계속 손대는 일이 벌어질 여지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추석에 한시적으로 청탁금지법 농축산물 선물 상한액을 올린 것과 관련, "결과를 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저희 나름대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선물 상한액을 올리는 법 개정까지는 아니어도 앞으로 또 한시적으로 올릴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농축산물 선물 상한을 허용한 것처럼 당장 코로나19 여파로 폐업 위기에 몰린 외식업에도 접대비 상한에 대한 한시적 허용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해충돌 빠진 반쪽짜리 오명


김영란법 도입 5년을 맞은 시점에 공교롭게 박덕흠 의원의 관급공사 수주 의혹이 제기되면서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 2015년 통과된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의 원래 명칭은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었다. 당시 국회 심의과정에서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번 박 의원 의혹을 계기로 여당을 중심으로 '이해충돌방지법'을 만들자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검찰이 아들의 군 휴가특혜 의혹을 받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 관련해서도 논란이 제기된다.
2017년 추미애 장관(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보좌관이던 최모씨가 직접 추 장관 아들 서모씨의 휴가와 관련, 군에 공식 민원창구가 아닌 개인번호로 전화를 건 것을 두고 부정청탁의 범위를 좁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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