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보다 무서운 편가르기 증세

      2020.11.23 18:00   수정 : 2020.11.23 18:00기사원문
지난 주말 '코로나 블루'에서 벗어나 끝물 단풍을 보려고 교외로 향했다. 서울 시내 도로의 제한속도가 대부분 시속 60㎞에서 50㎞로 바뀌었음을 새삼 확인했다. 동승한 친구는 "세금을 더 거두려는 방편"이라 했지만, 내심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부가 오해의 빌미를 준 측면이 없진 않다. 경찰청이 '교통 딱지' 발송 우편료 등과 같은 예산을 37.7% 증액한 사실을 보라. 이를 통해 내년 교통범칙금을 올해보다 3000여억원 더 징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니 말이다.

재산세 등 '세금폭탄'을 맞은 이들은 부동산 세제조차 증세 기도로 의심한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24번의 헛발질 부동산 대책이 애초 세금을 더 걷으려 집값을 띄울 의도"라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이런 분위기에서 "공시가 인상을 증세로 보는 건 논리적 비약"(김현미 국토부 장관)이라는 해명이 씨알이 먹힐 리 없다.

다만 우리나라의 부동산 세금이 집값과 비교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특히 높은 수준은 아니다. 그런 점에선 보유세 인상이 증세가 아니란 정부 말이 맞다. 반면 타국에 비해 월등한 거래세와 양도세를 포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부동산 세금 부담이 국민소득에 견줘 OECD 최고 수준이란 분석도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세수 증가는 "가격 상승과 거래량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곧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들 납세자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서울 일각에선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면적 84㎡ 1주택자도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쳐 1000만원 넘는 보유세를 낼 판이다. 오죽하면 '택스트레스'(택스+스트레스)란 신조어나 "집 한 채 가진 죄로 매달 100만원 가까운 세금을 갖다 바치는 꼴"이라는 푸념이 나오겠나.

물론 세수를 확보하려는 정부의 고충은 이해된다. 저출산이나 청년실업 등 구조적 난제를 풀려면 재정투입이 불가피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도 넘은 증세, 특히 과세 오조준은 위험하다. 예컨대 고가주택 보유자를 겨냥한 징벌적 과세의 대가를 보자. 다주택자들은 전월세가 인상으로 부담을 전가하는 반면 소득이 적은 은퇴자나 1주택 서민은 살던 집을 비워야 할 판이다. 지난 9월 불황으로 법인세가 1조2000억원 줄었는데 1년 전보다 국세는 외려 3조6000억원 늘었다니, 더 큰 문제다. "서민 중산층의 유리지갑을 털어 세수를 메워선 안 된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야당 대표 시절 언급이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일찍이 공자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다. 온 가족이 호환을 당하고도 외딴집을 떠나지 않는 한 여인으로부터 "이곳에선 혹독한 세금은 없다"는 말을 듣고 한 말이다.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경제수석은 "아프지 않게 거위 털을 뽑는 세법 개정"을 입에 올렸다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았었다.
하지만 납세자가 감내할 만큼 과세해야 한다는 말 자체는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이는 동남권 신공항 번복 소동에서 보듯 전 정부보다 더 심한 재정중독에 빠진 현 정부가 곱씹어야 할 대목인지도 모르겠다.
당장엔 인기영합성 투자재원 충당용 '편가르기 과세'를 자제하고, 장기적으로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보편적 증세원칙을 지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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