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정책,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라

      2021.07.06 18:46   수정 : 2021.07.06 18:46기사원문
"코인 투자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가르쳐줘. 나도 며칠 전 시작했어." 1년여 만에 만난 친구가 불쑥 말을 꺼낸다. 가상자산 투자비법을 묻는 주변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올 1·4분기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가 511만이라고 하니 국민 열 중 한 명은 가상자산 투자자인 셈이다.

부지불식간에 가상자산 투자는 일반인들에게도 쏠쏠한 재테크 수단이 된 듯싶다.

"블록체인 분야 유망한 스타트업 좀 소개해 주세요. 우리도 투자하고 싶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벤처투자자들도 한국 내 가상자산·블록체인 분야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었어요." 알고 지내던 투자업체 CEO가 연락을 해 왔다. 찾아보겠노라 맥없이 대답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딱히 떠오르는 블록체인 기업이 없어서다. 블록체인 산업 네트워크가 일천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사실 블록체인 분야 창업 소식이 그다지 눈에 안 띈다.

2018년 초 정부는 '가상자산 금지-블록체인 육성'이라는 정책 기조를 정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유망하니 잘 키우겠다고 했다. 가상자산은 투기수단이니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3년 뒤 정책의 결과는 정부 목표랑 정반대다. 키우겠다는 블록체인 기업은 씨가 마르고, 엄격히 관리하겠다던 가상자산은 국민 열 중 한 명이 투자하고 있는 대중적 투자수단이 됐다. 블록체인 산업을 키우겠다는 정책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사이 블록체인 업계에는 '탈블(블록체인 탈출)' 유행이 일 정도였다. 3년 전만 해도 시내 주요 공유오피스 곳곳에 막 창업한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있었다. 블록체인으로 콘텐츠를 공유하겠다거나,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하겠다거나 사업분야도 아이디어도 넘쳐났었다. 3년 새 추천은커녕 새로 창업했다는 프로젝트조차 찾기 어려워졌다.

올해 정부가 정책을 또 내놨다. 가상자산 투자시장 관리는 금융위원회가 맡고, 블록체인 산업 육성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기로 담당 부처를 정했다. 그럼에도 정책은 똑같다. 블록체인-가상자산을 둘로 쪼개는 정책이다.

블록체인 정책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은 무 자르듯 베어낼 수 없는 연결된 기술이다. 가상자산 없이는 블록체인 사업의 차별성을 살릴 수 없다. 소비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차별점이 없으니 신사업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없다. 그래서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은 붙여놓고 신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사기범죄와 투기 차단은 정부 몫이다. 공무원들과 경찰·검찰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신종 사기수법을 공부하고, 범죄자를 잡아낼 수 있는 기법을 연구해야 한다. 금융시장에 신종 사기수법이 넘쳐나지만 금융시장 전체를 단속하지 않고 신종 금융사기를 단속하기 위해 검찰에 전문가들을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3년 동안 정부와 우리 사회는 블록체인-가상자산에 꽤 비싼 수업료를 냈다. 수많은 젊은 블록체인 창업가들이 눈물 흘리며 "한국에서는 창업하기 어렵다"고 실망했고,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대책 없는 단속은 젊은이들의 분노를 만들어냈다.
범죄 단속을 위해 공부하지 않은 공무원 덕에 사기피해자도 속출했다. 지금 블록체인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가상자산-블록체인 이분화 정책을 고집하면 키우겠다는 블록체인 사업은 죽고 투기인지 투자인지 헷갈리는 투자시장만 남은 지금 같은 결과를 바꿀 수 없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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