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재연 조짐 보이는 한반도 정세

      2021.10.02 12:01   수정 : 2021.10.02 12:01기사원문
기사내용 요약
2년 전 하노이회담 결렬 뒤 남한에 화풀이한 김정은
이번엔 미국 심기 건드리며 남한에 통신선 재개 미끼 던져
위기 재연 막고 진폭도 줄이는 차분한 대응 필요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2주 만에 인사드립니다. 아쉽게도 오늘이 '창넘어 북한' 마지막 연재입니다.



소속부서가 바뀌어 연재를 이어갈 수 없게 됐습니다. '창넘어 북한'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마지막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평양=AP/뉴시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9일 공개한 사진에 28일 북한 자강도 룡림군 도양리에서 북한이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화성-8형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시험 결과 모든 기술적 지표들이 설계상 요구를 만족했다”라며 “자립적인 첨단 국방과학기술력을 높이고 자위적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데 커다란 전략적 의의가 있다"라고 평했다. 2021.09.29.

최근 북한이 각종 최신 미사일 시험 발사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그해 여름에도 각종 신형 무기 실험에 나섰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다만 2년 전과 달리 시험발사장마다 빠짐없이 등장했던 김정은이 최근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당시는 우리 정부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갔습니다만 최근에는 그보다는 우리 정부를 활용하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습니다.

2년 전 김정은이 기차를 타고 중국을 횡단해 베트남 하노이까지 달려갔던 건 트럼프와 만나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김정은은 하노이회담을 앞두고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속담처럼 회담에서 무얼 얻을 수 있을지 꼼꼼히 타진하면서 회담 개최에 최종 동의하기까지 꽤 미적거렸습니다. 미적거리는 김정은을 설득하는데 우리 정부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하노이=AP/뉴시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2019.02.28.

그렇지만 알려진 대로 회담에서 김정은은 체면을 구겼습니다. '과감하게' 영변 핵단지를 폐기하는 대신 제재를 풀어달라고 제안했는데 트럼프가 단칼에 거절해 버렸지요.

화가 난 김정은은 두 달 뒤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당국은 오지랍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그 뒤 분풀이라도 하듯이 벌인 각종 신형무기 시험도 주로 우리를 겨냥한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들이었습니다. 3차 정상회담을 하자고 꼬드기는 트럼프를 상대로는 밀당을 하면서 미국의 심기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은 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2년 전과 대조적입니다.최근 북한이 선보인 '1,500km 장거리순항미사일'이나 '극초음속활공미사일'은 유사시 동해상에 나타날 미국의 항모전단과 주한미군기지, 주일미군기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자극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겁니다.

연초에 김정은이 공언한 대로 미국 본토를 직접 겨냥하는 1만5,000km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시험 발사할 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올해엔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지금처럼 북한이 미국 심기를 깔짝깔짝 건드리는데도 미국이 계속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면 머지 않아 '본 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유혹에 넘어갈 지도 모릅니다
[평양=AP/뉴시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0일 공개한 사진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9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2일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다음 달부터 남북 통신 연락선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2021.09.30.
김정은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엊그제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했습니다. 이번 연설에서 김정은이 던진 대미, 대남 메시지는 2년 전과는 톤이 정반대입니다.

2년 전엔 '미국과 3차 정상회담을 해볼 수 있다'면서 기대를 접지 않은 대신 우리에겐 '정신차리라'는 식이었지만 이번엔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더 교활해지고 있다'고 했고 우리에겐 통신선 재개를 미끼로 던졌습니다.

김정은이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2년 전과 다른 점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죽을 지경인 인민들 눈에 2년 전처럼 무기시험장에 나타나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다고 판단한 건 아닐까 싶네요.

북한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나서자 미국도 서서히 반응하고 있습니다. 올해 북한 미사일 때문에 열린 유엔 안보리는 지난 3월과 지난달 15일 두 차례였습니다.

모두 미국이 아닌 유럽국가들이 소집했고 논의만 했지 특별한 대응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극초음속미사일까지 선보이자 미국이 직접 나서서 안보리를 소집했습니다.

계속 방치하다간 15,000km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쏠 지도 모르겠다고 경계하는 듯하네요. 핵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 사이의 신경전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올 들어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한반도 불안정성이 다시 커지는 느낌입니다.

1994년 미국이 이른 바 '수술적 타격(surgical strike)'으로 북한 핵시설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검토하던 때나, 금세기 들어 북한이 핵실험을 본격화할 때, 2017년 북한이 화성14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대자 트럼프가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고 험악한 말을 쏟아 낼 때도 지금과 같은 조짐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위기 상황'들이 가라앉긴 했습니다만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미리 마음을 놓을 수 있을 진 알 수 없습니다. 연재를 마치는 마당에 당장 진행중인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를 따져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수시로 반복되는 긴장 상황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 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믿기에 오늘은 위기와 안정 사이를 오가는 진폭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려 합니다.

[서울=뉴시스] 북한이 9일 새벽 정권수립 73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북한 매체들은 이날 열병식을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으로 규정으며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참석했다. 열병식에는 예비군 조직인 노농적위군이 등장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1.09.09. photo@newsis.com

북한은 매우 독특한 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을 '신정국가(神政國家)'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권력자의 명령이 곧 법이고 피지배자의 내면까지도 지배하는 그런 나라라는 뜻입니다.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단연코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역사에서 신정국가의 대표는 태양신인 파라오가 통치하던 고대 이집트, 제정시대 로마, 이슬람혁명 후의 이란과 같은 나라들이 신정국가로 꼽힙니다.

북한에 비해 우리는 훨씬 현대화된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월한 체제라는 걸 강조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남북한이 뿌리가 같은 민족이라고 해도 현재와 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한 넘기 힘든 벽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벽을 넘기 힘든 건 둘째치고 자칫 서로를 무너트리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8월28일자 창넘어 북한에서 '한국과 북한이 꼭 통일해야 하나요'라고 도발적인 화두를 던진 적이 있습니다. 전 평소엔 댓글을 거의 보지 않습니다만 당시엔 댓글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화두를 던진 것만으로도 찬반의견이 치열하게 갈리더군요. 우리 사회에 북한을 바라보는 눈이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걸 새삼 절감했습니다.

댓글 가운데 이산가족의 아픔을 몰라서 이 따위 글을 쓰느냐고 욕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평양 출신입니다. 어머니의 부모와 형제는 모두 1.4후퇴 때 함께 월남했지만 아버지는 할머니와 고모 두 분을 평양에 둔 채 전쟁이 끝나면 돌아가겠다며 월남했다가 이산가족이 됐습니다.

어린 시절, 아니 불과 십여 년 전까지도 추석이나 설 때 집안 분위기가 우울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기 위한 노력은 꼭 필요합니다만 저는 이산가족 문제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파주=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2019.06.30. pak7130@newsis.com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로 남북한이 하나가 돼야 중국도, 일본도 넘어설 수 있다는 질책하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얼핏 그럴 듯한 생각일 수 있지만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의지가 강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도 일본도 우리가 그들을 압도하려고 하기보다 잘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복수심이나 적개심을 바탕에 깐 채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 결코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의지가 강한 개인이나 집단이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없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질곡이 어느 정도일지, 또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따져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한국전쟁이 남긴 질곡은 전쟁이 끝난 지 3세대가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질곡을 외면하는 건 소영웅주의요 독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엔 남북한이 무리를 해서라도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만 못지않게 그럴 필요 없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또 통일을 위해 전쟁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습니다만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입니다.

이에 비해 북한에선 통일 담론이 하나로 통일돼 있습니다. 다른 많은 문제에서도 그렇지만 통일 문제에서도 북한 주민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절대 권력자와 다른 의견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선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는 여지가 우리보다 훨씬 큰 겁니다.

김정은은 3일전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남조선에 도발할 목적도 리유도 없으며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면서 '남조선은 북조선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심한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서울=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2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2일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30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1.09.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한국전쟁을 김일성이 일으킨 것부터 시작해 전쟁 뒤에도 수시로 도발했던 과거에 더해 핵무장으로, 각종 첨단 미사일로 위협 강도를 극대화하는 마당입니다.

김정은에게 거꾸로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지도, 북한을 먼저 공격한 적도 없고 핵무장도 하지 않았다'고 돌려주고 싶네요. 또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기 때문에 핵무장을 했다고 주장하는 건 '하늘이 무너질 걸 걱정하는 꼴'이라고 말입니다.

우린 한국전쟁 뒤 지금껏 잘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혹시라도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 터져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것을 걱정해 대비한 것이 전부입니다.


남북한이 이런 말싸움을 새삼 벌일 필요는 없을 겁니다. 70년 이상에 걸친 남북관계의 역사를 통해 얻은 교훈은 말싸움을 하기보다 위기를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으면서 차분히 우리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지혜롭게 구분하면서 말입니다.

애매한 말로 끝을 내는 걸 용서하십시요. 창넘어 북한에 보여준 관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공감언론 뉴시스yjkang1@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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