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극과 극 후기…바로 이걸 원했다"

      2021.11.29 17:02   수정 : 2021.11.29 17:02기사원문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지옥'이 '제2의 오징어 게임'(CNN)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징어 게임'과 달리 작품에 대한 반응이 호불호로 나뉘나 8일째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지켰다. 연상호 감독은 '지옥'의 세계적 인기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흡족해했다.

그는 "넷플릭스와 이야기할 때, 보편적 관객이 만족할 작품이 아니고 마니아 취향이라고 했다"며 "공개 즉시 1등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시청자들의 격렬한 반응은 창작자로서 내가 바랐던 일"이라고 했다.

'지옥'은 백주대낮에 '지옥의 사자'가 나타나 사람을 태워 죽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하나 그 사건을 맞닥뜨린 인간군상의 모습은 현실사회의 축소판과 같다.

지옥행 고지와 시연은 어느새 우리사회에 일어나는 온갖 재난과 동의어가 되며, 드라마 속 세상은 '기생충' '오징어 게임'과 같이 우리사회를 날카롭게 비춘다.
영국 가디언은 "'지옥'은 가벼운 스릴러로 포장한 파격적인 드라마"라며 "'오징어 게임' 흥행에 휩쓸려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10년 후 회자될 작품은 '지옥'일 것"이라고 극찬했다.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지옥"

학교폭력·사이비종교 같이 사회성 짙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사이비'부터 한국형 좀비물의 시작을 알린 '부산행' 그리고 주술과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한 '방법'과 초능력을 다룬 '염력'까지 연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지옥'은 초자연적인 소재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어우러진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물이다. 연 감독은 "코스믹 호러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 공포를 맞닥뜨린 인간의 모습을 다룬다"며 "기본적으로 연약한 인간에게 흥미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노동운동의 교과서로 통하는 '송곳'의 최규석 작가와 협업한 이 작품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목격한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변화를 너무나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연 감독은 "최 작가와 난상토론하면서 작업했는데, 가상의 지옥 고지와 시연 이후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현실에서 일어날법하면서도 구체적 사건이 연상되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코스믹 호러는 미스터리는 미스터리한 채로 남겨놓고, 그 앞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굉장히 현실성 있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지옥' 속 세상은) 지옥의 사자라는 존재를 빼더라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부연했다.

'지옥'은 1~3부가 지옥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신흥종교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지 보여준다면, 4~6부는 신흥종교가 어떻게 변질돼 우리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선과 악을 가르는 흑백논리, 폭력과 혐오를 조장하는 광기의 집단, 선정적 이슈를 쫓는 언론, 이 모든 것을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모습 등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또한 인간의 경험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비추고 모든 것이 완전히 무너지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연 감독은 "공권력이 무너져가는 과정, 그것을 대체하는 합리성 같은 것들이 이루어지는 과정, 합리적인 세상이 다른 합리성에 의해 원시사회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그려보고자 했다"며 "(지옥행 시연 생중계 당사자인) 미혼모 집의 한 벽면을 허물고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하게 하는데, 이는 현대인들의 야만성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또 전작 '사이비'에 이어 이번에도 종교를 주요 소재로 끌어들인 이유는 "종교가 인간의 모습을 극적으로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금 이곳이 지옥이라면, 휴머니즘은 무엇?"

연 감독은 앞서 '지옥'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로 새진리회의 교주 정진수를 꼽은 바 있다. 정진수는 거대한 우주적 존재를 대면하고 자신의 무의미함을 받아들이지 못해 미쳐 버린다는 점에서 '코스믹 호러' 장르에 최적화된 캐릭터다. 연 감독은 정진수에 대해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나 그 내면은 아주 평범하고 연약한 인물"이라며 "배우 유아인이 이 극적인 인물을 아주 예민하게 포착해서 매 프레임마다 섬세하게 표현해줬다"고 만족해했다. '지옥'은 유아인을 비롯해 김현주, 양익준, 이레, 박정민, 원진아, 김신록, 류경수 등 주·조연배우들의 호연이 앙상블을 이룬다. 연 감독은 "마치 드래곤볼을 모으듯 신뢰하는 배우들을 모으려고 아주 많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특히 극중 유아인과 대척점에 있는 인권변호사 민혜진은 브라운관에서 주로 활동하던 김현주를 기용해 눈길을 모았다. 박정민은 원작 자체를 좋아해 배역에 상관없이 참여의사를 밝힌 경우. 극중 부녀지간으로 나온 양익준과 이레는 연 감독과 작업한 바 있다. 연 감독은 "이레 배우는 내가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배우"라며 "(명장면인 생모 살해범 화장신에서) 감정이 복잡해서 우는데 웃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내 생각보다 더 풍부한 결로 표현해줬다"고 했다. 연 감독은 "우리사회의 풍경은 결국 서로 다른 신념이 충돌하면서 나오는 어떤 것들로 이뤄진다"며 "정진수와 민혜진 둘의 사상에 다 동의한다. 중요한 것은 다음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시즌1은 전 국민 앞에서 시연을 당했던 미혼모가 다시 되살아나면서 끝이 났다. 연 감독은 "어떻게 보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아주 미스터리하고 이상한 현상"이라고 짚었다. "그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삶에 의연한 민혜진의 엄마처럼 유한한 삶 앞에서 모두가 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미를 덧씌우는지다. 어떻게 보면 '지옥'에선 내가 죽는 날짜를 알았을 때부터가 지옥인 게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곳이 지옥인 것 같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지옥. 그렇다면 휴머니즘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시즌2에 대해서는 "영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면서도 "최규석 작가와 함께 지난 여름부터 웹툰 작업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SF영화 '정이'를 촬영 중인 연 감독은 내년 하반기 '지옥' 후속 웹툰을 공개할 예정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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