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빛나는 달빛동맹

      2020.05.26 17:21   수정 : 2020.05.26 17:21기사원문
작명이 반이라고 한다. '달빛동맹'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딱 느꼈다. 대구와 광주의 옛 지명인 '달구벌'과 '빛고을'의 앞 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참으로 잘 지은 고운 이름이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2017년 초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서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14개 지방변호사회 회장들 모임인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에 참석했을 때다.

대구와 광주의 변호사회 회장들이 어깨를 걸고 술잔을 나누면서 달빛동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두 지방변호사회는 상호발전을 도모하면서 영호남 교류증진을 통한 지역발전과 법률문화 향상에 기여하자는 목적하에 달빛교류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정기적으로 간담회, 등산 등 교류를 하면서 친분을 다지고 있다.

양 회의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2018년에는 동서화합을 뛰어넘어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평화통일기원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구와 광주는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멀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영호남을 대표하는 두 도시 간에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국민대통합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이미 2013년 3월에 '달빛동맹 공동협력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기억 속에 잠겨있던 달빛동맹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코로나19였다. 대구와 광주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마스크 등 구호물품을 서로에게 보내면서 도움을 주다가 대구에서 확진자가 급증, 병상 확보가 어려워지자 광주 병원에서 대구의 확진자들을 이송받아 치료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암울한 현실에 달빛동맹이 한줄기 빛을 비춰줬다.

이처럼 사회 각 영역에서 영호남의 지역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는데, 정치에서는 장벽이 아직도 높고 두껍기만 하다.

지난 제21대 총선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의석에 있어서 광주와 전남 100%, 전북 90%를 석권했고 미래통합당은 경북 100%, 대구 92%를 차지했다. 실상을 보면 전북과 대구, 울산의 무소속 1석도 뿌리가 같은 당 출신이다.

지역감정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치적 이용으로 골이 깊어졌다고 보는 데는 이론이 없다. 남북통일을 꿈꾼다면 동서갈등은 이제 극복돼야 한다. 다행히 정치에도 이런 시도가 계속돼 왔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지역구도를 넘고자 한 출마자가 여럿 있었는데, 미래통합당의 천하람 후보가 인상깊었다.

대구 출신인 그는 청년영입 케이스로 꽃길을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신념과 열정으로 과감하게 전혀 연고가 없는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출마했다. 비록 높은 기성정치의 벽을 단박에 넘지는 못했지만, 그는 벽 너머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미 장벽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멀리 내다본 용기와 경험을 가진 그는 조만간 동서통합과 새로운 정치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국회의원은 특정한 지역구, 정당, 이익집단의 대리인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국민 전체의 대표자이다. 지역구도를 뛰어넘는 큰 정치를 할 헌법상 의무가 있다.
어두운 밤길에 은은한 달빛이 유용하듯, 새로이 시작하는 제21대 국회의원들은 아직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암울한 정치현실에 주저앉지 말고 달빛동맹이 비춰 주는 올바른 길을 찾아가기를 기대해본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