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파생상품 컨퍼런스를 마치고/임관호 증권부장

임관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09.01 11:47

수정 2014.11.07 14:31


지난달 24·25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오키드룸은 열기로 가득했다. 늦여름 무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번째 개최되는 서울 국제파생상품 컨퍼런스.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는 대성황이었다. 1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국내 자본시장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쉬는 시간마저도 자리를 뜨지 않을 정도로 참가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이번 컨퍼런스에 패널로 참석한 외국인 강사들도 이 열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이번 행사의 성황은 두가지로 해석이 된다. 하나는 파생상품의 중요성에 비해 전문가가 절대부족한 우리 파생상품시장의 열악한 현주소를 말해준다.

또 한가지는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자산운용시장에 대한 은행·증권 등 국내 금융기관의 관심도를 반영한다. 자산운용의 필수조건인 파생상품에 대한 금융권의 인식이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전문가로만 강사진을 구성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국내 전문가도 강사진으로 초빙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렇지만 강사진을 섭외하면서 이 계획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깨닫게 됐다. 섭외의 치밀성이나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국내 파생상품시장의 현실이 말해주듯 국내 전문가를 찾는 작업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하기야 국내 파생상품시장이 10년도 안된 초기시장이라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사실상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세계경제환경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60년대에 파생상품이 등장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강산이 세번이나 바뀌는 시간적인 차가 있다. 그렇지만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국내 파생상품시장 규모는 매년 급신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파생상품시장의 거래규모는 총 2경1548조원이다. 전년도보다 90%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물론 단기매매에 치중하는 주식시장의 선물�^옵션거래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400조원에 이르는 국내 부동자금 규모만으로 예측해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규모면에서의 비약성장이 질적면에서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파생상품의 수준이나 종류가 아직까지는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상품개발 수준도 외국이 디자인한 상품을 카피하거나 수입해서 사용하는 단계에 멈춰 있다. 파생상품을 취급하는 국내금융회사들도 기껏 외국사의 하청업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같은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파생상품시장에 대한 준비도, 경험도, 제도적 정비도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올해 1·4분기 금융기관의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파생상품 거래이익 비중이 국내은행과 증권회사는 7% 내외에 불과하지만 외국은행 지점들은 55%에 이르고 있다는 통계치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국내금융기관들은 여전히 지나치게 안전자산 위주의 소극적 자산운용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외국은행들은 미래의 최대시장이 될 파생상품시장을 겨냥해 철저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무기로 적극적인 자산운용을 펼치고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외국투자은행들에게는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무수한 기업들과 서울도심의 대표적인 건물들이 그들 손으로 넘어갔다. 엄청난 차익을 거두고 철수한 투자은행들도 많았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또다시 국내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시대로 진입한 국내금융시장에 또다시 군침을 삼키고 있다.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400조원대 부동자금을 공략하기 위해 금융신상품을 갖고 시장진입을 노크하고 있다. 국내금융기관과 제휴해 간접적으로 파생상품시장에 참여했던 외국금융사들이 직접 진출을 꾀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조짐에도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조용하다. 어느 주체도 파생상품시장의 육성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을 걱정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파생상품시장마저 외국계에게 빼앗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내자본의 해외이탈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금운용을 결국 해외에서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걸리고, 업종간 이기주의에 걸려 한국 자본시장의 시계는 여전히 느림보처럼 걷고 있다.
정부도 금융기관도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愚) 또다시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 limg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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