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뚜렷했던 '3김(金) 시대'도 역사속으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활약했던 '3김(金) 시대'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암흑기이자 민주화 시대의 주춧돌을 놓은 새로운 태동기였다. '3김(金) 시대'는 박정희 정권 몰락의 단초가 된 1979년 10.26 사태로 서막이 열렸다. 당시 서울의 봄을 맞아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이 대권 경쟁에 돌입하고 공화당 소속이던 김 전 총리가 맞붙었지만 세사람의 첫 경쟁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新)군부가 12·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다. 두 김 전 대통령이 구속과 가택연금을 당했고 김 전 총리는 부패혐의로 공직 사퇴를 하면서 혹독한 정치적 겨울을 맞기도 했다. 세사람은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1987년 대선에서 맞붇었지만 결과는 신군부 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이후 세 사람의 합종연횡으로 대권의 주인공은 물론 대한민국 정치도 크게 운명이 갈렸다. 1988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YS(통일민주당), DJ(평민당), JP(신민주공화당)는 각각 영남, 호남, 충청의 표를 결집하면서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정치가 이들 3인의 합종연횡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지형으로 3분할된 것이다. 이후 대권도 이들의 행보에 운명이 갈렸다. 특히 김 전 총리가 캐스팅 보트 역할을 주로 했다. 충청권이 지금껏 대선마다 캐스팅보트 역할로 주목을 받는 것도 이때 부터였다. 처음 웃은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으로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했다. 두번의 군사정부 집권 이후 첫 민간인 출신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의 주인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민련 총재였던 김 전 총리가 연대를 모색하면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 탄생한 결과였다. 대한민국 첫 수평적 정권교체로 인한 민간 정부의 탄생이었다. 이들 세사람이 주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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