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재래시장 제대로 살리려면/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11.02 13:52

수정 2014.11.07 12:34



전반적인 경기 회복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재래시장의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서민경제는 아직도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재래시장 활성화가 서민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정가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 해석이 분분한데 실제로 서민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해석과 이제는 재래시장이 서민경제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해석이 있다. 주목할 상항은 바로 후자의 경우인데 이는 재래시장의 경쟁력 자체가 현대적인 소매 업태에 비해 떨어지므로 재래시장의 경기는 경쟁력 차이의 결과이지 서민경제와는 별개라는 것이며 이는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반적인 경기 회복도 중요한 문제지만 재래시장 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관심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정부는 지난 2004년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발휘해 재래시장의 활성화에 나섰다.
그러나 재래시장의 활성화까지 가야할 길이 멀다. 우선 재래시장의 미래 비전부터 정의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며 그렇다면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이와 관련, 국내의 재래시장 같은 유럽,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의 노천시장을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유사하나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유럽의 경우 노천시장은 통상 도시 한복판의 광장에 위치한다. 유럽 도시의 광장은 상거래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문화적 중심이기도 하다.

일본도 이와 유사하다. 즉 노천시장은 그만큼 유럽의 도시 지역사회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천시장이 없어지면 도시의 개성이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미국 시애틀 중심가에 있는 Farmer’s Market의 운영자는 시애틀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통적인 거리로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시장을 보호해줄 것을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이같은 사례들은 재래시장 활성화의 이유가 단지 현재 장사하고 있는 소상공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화적·사회적 중심지를 보호하는 데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과연 몇 개의 재래시장이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두번째 재래시장 활성화의 과제는 재래시장을 소비자가 찾아오고 싶은 장소로 만드는 일이다. 최근에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몇 군데를 걷고 싶은 거리로 지정하고 주변 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재래시장이 일정 장소에 변변하지 못한 시설로 가득찬 곳이 아닌 동네 사람들이 통상 다니는 출퇴근 길로, 주말이나 저녁에 기분 전환을 위해 산보하는 장소로 그리고 흥미로운 동네 행사가 벌어지는 무대로 거듭나야 한다. 일본의 중심시가지 개발이나 상점가 활성화 사업이 바로 생활환경 개선과 연계돼 있다는 점을 곰곰이 새겨 보아야 한다. 미국 뉴욕의 42번가 주변 주역은 재개발로 지역주민이 밤에 안전하게 거닐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서 활성화에 성공했다.

이같은 점에서 통행에 방해가 되는 노점상의 정비는 꼭 필요하다. 노점상의 생존권도 중요하지만 임대료와 세금 내고 장사하는 재래시장 상인의 이익 보호가 더 정당하고 우선이다. 아울러 도시계획과 연계된 재래시장의 활성화가 진행돼야 한다. 새로운 주택단지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다면 중요 진출·입로에 중소규모의 점포로 구성된 상점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도시계획이 구성돼야 한다.

무엇보다 재래시장이 취급하는 상품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상점가와 재래시장에 있는 점포는 오직 그 곳에만 취급하는 상품을 갖추고 있다. 적게는 1000여종 많게는 1만가지가 넘는 일본의 전통차, 절임식품, 그리고 정종류의 상품이 주력 상품이다. 워낙 맛도 가지가지이고 수많은 브랜드가 있어 어떤 대형할인점이라도 이를 모두 취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독일 뮌헨의 소시지 시장도 마찬가지다. 점포마다 독특하게 만든 소시지는 또 수많은 종류의 맥주와 함께 팔리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는 지역·연도 등으로 구분된 수많은 포도주 및 각각의 포도주에 어울리는 수천 가지의 치즈와 셀나미 등을 조합, 판매하는 수많은 중소 규모의 점포가 있다.

결국 소비자의 매우 세분화된 기호에 맞추어 초대형점포도 모두 취급할 수 없는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하고 이를 취급함으로써 재래시장, 그리고 상점가에 있는 중소 규모의 점포가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소 소매점은 가격 경쟁력보다는 철저한 차별화 우위를 확보해야 생존할 수 있다. 즉 매우 세분화된 소비자 기호 그리고 각각의 기호에 대응하는 브랜드의 존재 여부가 재래시장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한다.
대형점이 취급하고 있는 동일한 중국산 농산물, 신라면과 맛동산을 취급한다면 재래시장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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