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출총제와 과외금지/곽인찬 논설위원 겸 경제연구소장



출자총액제한제 하면 지난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과외금지 정책이 떠오른다. 학생들한테 공부하지 말라는 거나, 기업들한테 출자하지 말라는 거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둘 다 세상에 유례가 없는 정책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과외금지 정책은 완패했다. 요즘 학생들에게 과외는 필수, 해외 조기유학은 선택이 됐다.

억지로 눌러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 기업 출자를 가로막는 출총제는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차피 정부가 지는 게임이다. 이 제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 중량급 ‘내부 고발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시장경제 순리에 반하는 제도

출총제 폐지 논란에 불을 지핀 이는 다름아닌 집권당 핵심 간부다. 열린우리당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얼마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출총제는 선진국에서 하지 않는 제도”라면서 “폐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 퇴임을 앞둔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특히 출총제가 “외국자본에 대해 국내자본을 역차별하는 효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왜 정부 안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걸까. 답은 자명하다. 출총제가 시대적 소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지난 86년에 처음 도입됐으니 올해로 꼭 20년째다. 98년에 잠깐 폐지됐으나 외환위기를 거쳐 2001년 부활했다. 긴 세월 출총제는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 역할을 했다. 문어발식 확장과 재벌 총수의 황제식 전횡을 견제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외국자본이 쏟아져 들어와 안방을 헤집고 있다. 상장사 주식의 40%가 외국인 소유다. 출총제가 대기업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있는 동안 투기성 외국자본은 SK·KT&G 등 만만한 먹잇감을 찾아 시장을 활보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을 웃도는 삼성전자가 경영권 위협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도 계열사 출자를 통한 우호지분 확대는 원천적으로 길이 막혀 있다.

시대착오적인 정책은 하나 더 있다.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가로막는 금산(金産)분리 원칙이 그것이다. 정책의 오류를 지적하는 ‘내부 고발자’는 여기에도 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국내 산업자본이 밉다고 외국자본에 우리 은행들을 모두 내줘야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의 말대로 제일·한미은행은 이미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외환은행은 매각을 진행 중이지만 국내 산업자본은 강 건너 불 구경만 하고 있다. 윤위원장은 “양심을 걸고 얘기하라면 우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진짜 놀라운 발언은 시중은행장들로부터 나왔다. 이들은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허용해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과거 재벌이 은행을 넘보지 못하도록 선을 그은 게 바로 금산분리 원칙이다. 그 원칙의 수혜자들이 되레 “우린 괜찮으니까 풀어주라”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이중성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집착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공포에 떠는 기업들에 알아서 잘하라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국제 기준을 준수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칭찬할 만하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개방 의지를 과시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준의 이중성이다. 외국자본엔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면서 국내자본엔 오류 투성이 로컬 스탠더드를 계속 들이대고 있다. 그 결과가 역차별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 좋다. 외국자본을 배척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국내자본을 차별해서도 안 된다. 경제 애국주의가 아니다. 같은 룰만이라도 적용해 달라는 거다. 자본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핵심이 아닌가.

/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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