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론스타를 위한 변명/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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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짓이 참 얄밉다. 2년 반 만에 4조원이 넘는 큰 돈을 벌어놓고 세금은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그러다가 여론이 워낙 나빠지니까 사회발전기금으로 10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말이 ‘기부’지 사실은 여론 무마용 ‘개평’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맘에 안 드는 짓만 골라서 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나가겠다니까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났다. 그러잖아도 한번 시비를 걸고 싶던 참이었다. 정치인들은 정부 관료들을 불러 호통을 치고 있다. 감사원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BIS 비율이란 걸 놓고 연방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검찰은 론스타 관련 인물들을 줄줄이 불러 꼬치꼬치 캐묻고 있다.

열 받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론스타 의혹을 차분히 짚어보는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 혹시 우리가 지금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어깃장을 놓고 있는 건 아닌지, 머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가슴은 여전히 로컬 스탠더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여론몰이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그랬다간 자칫 엉뚱한 사람 잡을 수 있고 애써 쌓아온 개방국가 이미지를 대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환란주범’을 색출, 처벌해야 한다며 온 나라가 난리를 친 적이 있다. 주범 중 한 명으로 몰렸던 김인호 경제수석의 경우 국민적 희생양이 돼 옥고까지 치렀으나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정책 판단의 잘잘못을 사법 심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희한한 여론몰이는 당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남긴 채 그렇게 유야무야 끝났다.

그 때와 비슷한 일이 론스타 사태에서 되풀이될 것 같은 분위기다. 몇 조(兆) 단위 국부유출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뒤집어 씌워야만 직성이 풀릴 듯하다. 매각 직전의 SK글로벌 분식회계·카드사태 등 긴박했던 상황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지금 기준으로 멀쩡한 은행을 왜 팔아넘겼느냐고 아우성이다. 환란 때처럼 정책 결정이 다시 법의 심판대에 설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자. 외환은행 매각은 결과적으로 성공작이다. 실적도 좋아졌고 주가도 뛰었다. 론스타는 높은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높은 수익을 얻었다. 대박을 터뜨린 주체가 투기성 강한 외국계 사모펀드라서 복통(腹痛)을 참지 못하고 있는 게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명색이 금융허브를 구축하겠다는 나라에서 뒤늦게 판을 뒤집으려면 그 역풍까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문을 열 만큼 열었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인들이 보는 눈은 다르다. 한국은 여전히 자본 국수주의 색채가 강한 나라로 분류된다. 론스타 처리는 이같은 시각의 정당성을 판명하는 시금석 노릇을 할 것이다.

누군들 ‘먹튀’를 두둔하고 싶겠는가. 그렇지만 얄밉다고 감정을 앞세우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다. 냉철한 경제논리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과세할 게 있으면 과세하고 현행 법이 어수룩하면 빈틈없이 보완해야 한다. 문은 계속 열어놓되 나갈 때 글로벌 스탠더드가 허용하는 세금 여과장치를 거치도록 하자는 말이다.

더불어 금고에 돈이 넘치는 토종 산업자본이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도 더 넓힐 필요가 있다. 과거 기업이 늘 돈에 쪼들릴 때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도입한 금산(金産)분리 원칙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다. 사실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넘어간 것도 국내 은행들은 돈이 없고 산업자본은 은행 소유가 원천 금지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론스타는 우리의 빈 틈을 노렸고 그 전략은 적중했다. 이번엔 우리가 당했다. 그렇다고 너무 흥분하진 말자. 그보다는 차가운 머리로 지혜를 모아 제2, 제3의 론스타 출현을 막는 게 급선무다.

/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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