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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도마에 오른 EU 언론정책/안병억 런던 특파원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6.08 15:13

수정 2014.11.06 04:41



유럽연합(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의 언론 정책이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는 25개 회원국 언론사가 EU 관련 보도를 할 경우 많은 돈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이 자칫 지원을 미끼로 친 EU적 보도를 유도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아울러 자체 보도에 더 많은 인력과 돈을 투입하려는 계획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회원국의 신문방송사들이 EU집행위원회에 EU 관련 보도물 제작 지원을 신청할 경우 조건이 명시돼 있었다. 지난해까지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것은 “유럽연합의 이미지와 정책, 그 기구의 이미지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훼손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는 조항이었다.


이런 조항을 근거로 집행위 언론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 조항 때문에 집행위의 지원을 받은 언론사들이 과연 제대로 유럽연합 정책과 기구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른바 어용 보도밖에 할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비판이 일자 집행위원회는 올해부터 문제가 됐던 제작 지원서 조항을 “유럽연합 관련 보도를 공평하고 객관적으로 하겠다”는 내용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런 변경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초 독일 중부의 프랑켄방송이 내보낸 유럽연합의 지역정책 보도가 미디어 비평가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집행위 지원을 받은 이 프로그램은 낙후된 프랑켄 지역이 유럽연합의 도움으로 아주 많이 발전했다는 칭찬 일변도의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예산의 30%가 회원국의 낙후된 지역 발전을 도와주는데 지출된다. 당연히 지원을 받은 낙후지역은 이런 정책에 대해 고마움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지역정책은 실행 과정에서 이를 집행하는 지역정부가 낭비를 많이 하고 지역개발 효과가 제대로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돼 왔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긍정적인 면만을 집중 부각한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회원국의 경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보니 집행위원회가 회원국 언론사의 보도 제작에 지원하는 액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5개 회원국 가운데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 언론사에 지원한 액수를 살펴보자. 지난 2004년 12개 텔레비전 방송사에 100만유로(약 12억원)를 지원했다. 2005년에는 라디오 지원에만 56만유로를 지출했다. 2006년 25개 회원국 언론사에 1000만유로(약 120억원)를 지원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언론사가 경비 절감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행위의 지원이 없으면 언론사들은 EU 관련 보도물 제작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시민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유럽연합 관련 보도제작에 자금과 인력을 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외방송 도이체벨레의 경우 지난해 16만유로(약 1억8000만원)의 지원을 받았다. 주 1회 방송되는 유럽연합 관련 특집물 카페 유로파는 집행위의 지원으로 제작된다. 도이체벨레의 요하네스 호프만 대변인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지원이 방송제작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비단 도이체벨레뿐만 아니라 제2공영방송 ZDF와 중부독일방송(MDR) 등도 집행위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왔다.

집행위원회의 언론 정책이 이런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집행위는 자체 언론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언론 담당 마곳 월스트롬 집행위원은 유럽위성방송(EBS)에 인력과 장비를 대폭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집행위원회가 자체 운영하는 이 방송은 이제까지 방송사에 관련 화면을 무료로 제작, 배포했으며 집행위원회와 EU 정상회담 등의 소식을 전해왔다. 그런데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에게 친근한 유럽연합을 만들기 위해 자체 언론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한 것이다.


기존 방송사들은 과연 집행위원회가 운영하는 방송사가 유럽연합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평한 보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이미 독립적인 위성방송 유로뉴스가 EU 관련 보도를 한다는 조건으로 이 방송사에 연간 12억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일부 언론은 시민들이 유럽연합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막대한 돈을 투입해 관련 보도를 제작케 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 anpy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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