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비리 온상된 스톡옵션/송계신 국제부장

송계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8.21 04:31

수정 2014.11.06 00:54



경영 성과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지급되는 이른바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이 부정축재를 위한 도구로 악용되는 것은 충격적이다.

미국 음성메일 소프트웨어업체인 콤버스 테크놀로지의 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스톡옵션 비리로 형사고발돼 쫓기는 신세가 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15일 이 회사의 전 CEO 코비 알렉산더를 ‘도망자’로 지목하고 국제형사기구 인터폴과 공조해 검거에 나섰다. 그는 스톡옵션 부여 날짜를 소급 적용하는 방식으로 부당 이익을 취하는 등 증권 사기 공모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알렉산더 전 CEO는 지난 91년부터 2005년까지 받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1억3000만달러의 이득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스톡옵션 부여 일을 주가가 낮은 날로 소급 적용해 취한 부당 이득만 640만달러에 이른다고 미 사법 당국은 밝히고 있다.


스톡옵션을 통해 취득한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한 점도 놀랄 일이지만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과거 주가가 크게 하락한 날을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날짜로 잡아 이사회의 사후 승인을 받는 방식으로 수백만주의 주식을 받아 이득을 극대화하는 꼼수가 동원되기도 했다.

또 부여 일을 소급 적용한 스톡옵션 수백만주를 가공의 인물에게 배정했고 이렇게 만든 스톡옵션을 비밀 계좌인 ‘슬러시 펀드’에 넣은 뒤 경영진은 물론 마음에 드는 직원에게 부당하게 재배정하는 불법이 자행됐다.

알렉산더 CEO는 부정거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사를 임원으로 스카우트해 관련 서류를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받다가 결국 비리 사실이 밝혀져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앞서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미국 브로케이드 커뮤니케이션스의 그레그 레이스 CEO도 스톡옵션을 통해 부당 이득을 취한 비리로 옷을 벗고 불명예 퇴진했다.

더 놀라운 것은 벤처기업뿐 아니라 미국의 대기업들도 공공연하게 스톡옵션 비리에 젖어 있다는 점이다.

‘아이팟’으로 세계 MP3 플레이어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미국 컴퓨터업체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 등 경영진도 스톡옵션 부여 날짜를 소급 적용한 것으로 자체 감사 결과 밝혀졌다.

스톡옵션 비리를 저지른 기업이 늘어나자 FBI는 스톡옵션 부여 일을 소급 적용한 의혹이 있는 100여개 미국 업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 사법당국의 조사 착수에도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는 등 증시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그다지 크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FBI의 조사 결과에 따라 스톡옵션 비리로 기소되거나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경영진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직원에게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능률급제인 스톡옵션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행태가 우리나라에서도 속속 드러나 더 안타깝다.

스톡옵션이 경영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가 하면 편법적으로 기업을 양도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코스닥기업을 인수해 우회 상장하는 수단으로 스톡옵션이 이용되는 것은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정치·경제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의 이면에 스톡옵션이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최근 국가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성인 게임기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의혹의 핵심도 결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인 노지원씨가 받은 스톡옵션과 고리를 함께 하고 있다.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이 최근 자신이 보유한 지분 전량을 유진기업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뿌리는 스톡옵션에 두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받은 스톡옵션만으로 최대주주에 올라선 데다 이를 통해 취득한 지분과 취득 가능한 지분까지 미리 팔았기 때문이다.


강회장은 또 지난해 12월 스톡옵션 900만주를 받았음에도 계약 사실을 공시하지 않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문제는 스톡옵션 부여일을 주가가 낮은 날짜로 소급 적용하는 짓이나 스톡옵션을 받고도 주주에게 알리지 않는 것, 경영권과 관련해 스톡옵션을 이용하는 모든 행위가 주주들의 재산을 빼돌리는 ‘도적질’이라는 점이다.


스톡옵션이 개인의 부당한 치부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경영권 유지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규정 개선을 서두를 때다.

/ksso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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