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어느 별에서 오셨나요?”/곽인찬 논설위원



남자와 여자의 태생적 ‘상호이해 불가’를 재치있게 파헤친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산드라와 래리는 결혼한 지 20년이 된 부부다… (둘 사이의) 일방적인 대화는 대체로 이렇게 진행된다.

산드라:이번 주말에 뭘 하면 좋겠어요.

래 리:난 아무래도 좋아. 당신은.

산드라: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어떨까요.

래 리:모르겠어…. 텔레비전 프로그램 예정표 어디 있는지 못봤소.

산드라:(기분이 언짢아져서) 당신은 왜 나와 얘기를 안 하려는 거예요.

래 리:(당황한 나머지 잠자코 있는다.)

산드라:당신, 나를 사랑해요.

래 리:물론 사랑하오. 그러니까 당신하고 결혼한 거고.

산드라:어떻게 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 사이에는 전혀 대화가 없어요. 이젠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나요.”

서로 다른 행성에서 태어난 여자와 남자가 지구라는 별에서 만나 한 집에서 살아가려니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이 많겠는가.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과 재계가 충돌할 때마다 화성과 금성이 떠오르면서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또 시작이구먼. 그래봤자 소용 없을 텐데….”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가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며 폐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출총제 폐지는 투자→성장→고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정부도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 시발점이 될 출총제 폐지를 거부하는가…. 재계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딴소리를 하고 있다. 권오규 경제 부총리는 취임 직후 “수도권 규제 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는 창업부터 퇴출까지 전 과정을 보면 지엽말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의 개봉이 임박했음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대책의 당사자들이 절실히 원하는 건 묵살한 채 무슨 대책을 내놓겠다는 건지 자못 궁금하다.

정부는 왜 스스로 지엽말단이라면서 출총제에 집착하는 걸까. 사소한 거라면 오히려 더 흔쾌히 풀어줄 수 있지 않은가. 마침 재계는 출총제 폐지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풀어주고 생색내고 정부로서는 일석이조 아닌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의 행태를 보고 불가피하게 내린 결론은 이렇다. 정부가 출총제를 선뜻 내놓지 않는 것은 재계와 출신 행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코드가 달라 좀처럼 마음이 동하질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재계가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걸 일찌감치 깨우친 사람은 다름아닌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지난 3월말 대한상의 특강에서 노대통령은 “소통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기업인 사이에 놓인 불통의 벽은 여전히 높다.

마찬가지로 재계는 정부가 하는 일이 늘 못마땅하다. 한번도 진지하게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는 정부에 애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금고엔 현찰이 수북이 쌓여 있으나 투자를 미룬 채 내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정부와 재계의 관계는 파경 직전까지 간 산드라·래리 부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지난 3년 반 동안 ‘주식회사 대한민국호(號)’라는 배에 같이 타고 있었다는 게 용할 정도다. 관계 회복을 꾀할 좋은 기회였던 출총제 폐지 선물은 주고받기도 전에 벌써 포장이 너덜너덜해졌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정부와 재계가 옥신각신 다투는 동안 나라 경제만 골골 앓고 있으니 그게 안타까울 뿐이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