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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獨 기업감세,도미노 일어나나/안정현 파리특파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1.09 18:06

수정 2014.11.04 19:36

독일 정부가 지난 2일 법인세 인하에 합의했다. 사민당과 기민-기사당으로 이뤄진 대연정은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세금을 오는 2008년부터 대폭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 초안에 합의하고 본격적인 개정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독일은 지금까지 기업에 대한 세금이 유럽연합(EU) 회원국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평균 38.6%였다. 이는 현 EU 회원국 평균인 25.8%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2008년부터 독일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에 적용될 평균 세율은 29.8%. 현재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EU 주요 국가들이 모두 30% 이상의 평균 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상징적인 수치라고 할수 있다.

독일의 이번 조치가 이웃 주요 EU 회원국들에까지 그 파장이 이어져 본격적인 감세 경쟁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자국 기업의 외국으로의 이탈을 막고 국내에서 더 많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EU 통합 과정의 일환으로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허락한 결과 유럽 기업들은 법인 세율이 낮은 국가를 찾아 본사를 이전하거나 계열사를 설립하는 것이 흔했다. 회원국이 25개국으로 늘어난 이후 이런 양상은 더욱 눈에 띄게 나타났다. 신규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은 기존의 서유럽 회원국들에 비해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국들은 자국 기업의 외국 이탈을 막거나 역내 회원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감세 정책을 잇달아 시행하는 등 회원국들간의 감세 경쟁을 조장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에 비해 기존 15개 회원국들 모두에서 기업에 대한 평균 과세율이 큰 폭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6년 38%에서 2006년 현재 12.5%로 가장 큰 폭의 세율 인하를 감행, 현재 EU 회원국 내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아일랜드는 그 덕택으로 2000년대 초반 역내에서 가장 큰 폭의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금융업 관련 지주회사에 대해 소득세를 면제해 주었던 룩셈부르크도 이러한 이득을 톡톡히 누려왔던 국가 중의 하나였다. 유럽 내의 대표적인 조세회피 지역으로 간주돼 왔으며 심지어 룩셈부르크에 세워진 적지 않은 회사들은 ‘우체통 회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서류상으로만 있을 뿐 이곳에서 실제 활동은 없는 기업들을 빗댄 말이다.

급기야 EU 집행위원회는 몇 년간의 실사 끝에 룩셈부르크의 이러한 세제 혜택이 역내 금융기업들의 공정한 자유 경쟁을 저해한다고 판단, 관련법안을 폐지하라는 시정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감세 경쟁은 조세 덤핑이라는 말로 회자될 정도로 만연해 EU 회원국들을 딜레마에 처하게 하고 있다. 역내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현 상황에서 자국 내에 투자를 유치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보다 경쟁적인 조세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조치다. 그러나 전반적인 유럽 국가들의 고령화 추세 등을 감안할 때 기존에 있던 수준의 사회복지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세수 확보 또한 이들 회원국들이 가진 시급한 과제다.

결국 대안은 EU 차원에서 지나친 출혈경쟁을 막고 적정 수준의 조세를 유지하기 위한 조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EU 내에서 조세관련 합의는 만장일치이기 때문에 한 회원국이라도 반대하면 부결된다. 이런 딜레마는 회원국이 25개국으로 확대된 이후 더 심각해졌다. 만장일치라는 제도상 25개 회원국들로부터 이러한 완전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신규 회원국들은 자신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조세율을 이용해 서유럽 기업들의 유치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서양 너머 미국이 지난 10년간 40%대의 기업 과세율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하는 동안 EU 회원국들의 평균 과세율은 38%에서 25.8%로 낮아졌다.

독일의 경우 이번 감세안이 확정될 경우 연방정부는 향후 290억유로의 세수를 잃게 될 전망이다.
이를 메우기 위해 내년 1월1일부터 부가세를 현행 16%에서 19%로 인상했다. 이런 부가세 인상 조치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부담을 주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EU 차원의 세수 조율,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junghy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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