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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시론] 할리 데이비드슨 상생경영/김동률 KDI 연구위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4.09 17:41

수정 2014.11.13 13:32

경춘가도 쪽으로 봄 나들이라도 나서면 어김없이 들리는 굉음이 있다. 할리 데이비드슨의 우렁찬 엔진소리다. 몇년 전 창사 200년을 넘긴 할리 데이비드슨은 누구나 한번쯤 동경해 보는 모토사이클이다. 모터사이클은 언제부턴가 반항, 젊음, 자유, 해방 등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돼 왔다. 그러기에 제임스 딘이 할리 데이비드슨에 기댄 채 담배를 꼬나 물고 째려보던 브로마이드가 한때 한국의 다방에 단골로 붙어 있었다. 그뿐인가. 록밴드 딥 퍼플은 짙은 자주색 커튼(딥 퍼플) 뒤에 숨겨놓은 할리의 굉음과 함께 콘서트를 시작하곤 했다.


1803년 미국 밀워키에서 윌리엄 할리와 아서 데이비드슨이 창업한 이 회사는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빠른 기동력을 지닌 소형 운송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다. 할리 데이비드슨이 항상 성공적인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1973년 할리 데이비드슨은 엄청난 경영위기에 빠진다. 혼다, 야마하, 스즈키, 가와사키 등 싸면서도 월등한 품질의 일제 모터사이클의 공세에 밀린 데다 잦은 노사분규로 시장점유율은 75%에서 25%로 곤두박질친다. 회사는 하루가 다르게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1985년 채권은행이 공장을 매각하기로 한 데드라인 불과 한시간 전에 나타난 한 벤처 기업가의 도움 덕분에 기사회생한 아픈 기억도 있다. 할리 데이비드슨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국제 기술자협회(IAM)의 루 키퍼는 성공적인 노사관계를 들었다.

사측은 회사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자 곧바로 “Having no secrets”를 주창하며 그 동안 사측의 고유권한인 주요 경영행위들을 종업원들이 알 수 있도록 낱낱이 공개했고 구조조정이나 신규 투자 등은 종업원들과 긴밀한 협의를 거쳤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와 같은 사주에 의한 천문학적인 비자금이 만들어지기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종업원들은 회사의 구조조정을 믿고 따랐다. 주말이면 임직원들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마케팅 차원에서 돌아 다녔으며 소비자들의 의견은 곧바로 다음 모델 개발에 반영시켰다. 이 지방의 유력지인 밀워키 저널에 따르면 종업원 65%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며 여성 종업원에게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도록 권유해 이들의 의견을 반영, 급증하는 여성소비자들을 대비했다. 이른바 상생경영이다. 성공적인 노사관계는 IAM 세미나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이후 지난 15년간 연 평균 17%의 순익 증가율을 보였으며 2000년 드디어 30년 만에 일본 기업을 제치고 정상을 탈환했다.

할리 데이비드슨의 경우는 성공적인 케이스다. 노사관계 모두가 할리 데이비드슨처럼 되면 좋겠지만 그리 쉬운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미국의 경우 노조활동이 왕성한 회사의 경우 투자는 눈에 띄게 줄고 주주들의 배당 또한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종업원 임금 1달러를 올리면 주주 배당금은 1달러가 줄어든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이처럼 아직도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세한 것이 경제계의 현실이다.

지난주 울산 현대자동차, 경남 창원의 GM 대우,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노키아 등을 다녀왔다. 이들 기업들이 이구동성으로 걱정하는 것은 환율도, 기술력도 아닌, 전투적 대결구도의 노사관계였다. 현대차의 경영상의 달력은 열한 달밖에 없다고 했다. 노조가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반복하다 보니 아예 파업을 전제로 사업 계획을 짠다는 얘기다.
많은 외국기업이 떠난 마산의 경우, 군데군데 텅 빈 공장건물이 봄볕에 고적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건국 이래 최초로 노조 친향적인 정권 아래 있다.
참여정부는 누가 뭐래도 노조 친화적인 정권이다. 따사로운 봄볕만큼이나 가깝게 다가 온 춘투의 계절, 노무현 정권에서만큼은 노조가 조금 양보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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