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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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한국판 워런 버핏이라고 해도 크게 손색이 없겠다. 손을 대면 주가가 오르니 ‘미다스의 손’이란 별칭이 어색하지도 않다. 투자자들은 그가 이끄는 자산운용사가 어떤 종목을 사고 팔았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기관투자가들까지 자존심을 버리고 따라하기에 나섰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힘은 매우 세다. 그 힘을 입증한 이는 다름아닌 삼성전자 IR팀장인 주우식 부사장이다. 주 부사장은 얼마 전 “박현주 회장을 만나려고 신청을 해놓았다”고 밝혔다. 이건 마치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모양새가 아닌가. 삼성전자가 어떤 회사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한국 증시의 간판스타로 군림해 왔다. 삼성전자 주가가 기침을 하면 코스피 지수는 감기에 걸렸다. 그랬던 삼성전자가 신흥 금융자본 앞에서 얌전하게 몸을 낮추고 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박현주 회장을 보면 언뜻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해 마시라. 정주영의 불도저식 경영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거침없이 걸어가는 개척자 정신이 일맥상통한다는 얘기다. 정주영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조선(造船) 한국의 기틀을 놓았다. 박현주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국내 첫 뮤추얼펀드인 ‘박현주펀드’를 내놓아 선풍을 일으켰고 중국·인도 증시를 뚫어 돌풍을 이어갔다.

자산운용의 축이 은행에서 증시로 이동한 것이 전적으로 박현주 회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시대적 요청이 더 컸다. 그러나 그 흐름을 간파하고 흐름을 대세로 정착시킨 공로는 상당 부분 박 회장에게 돌리는 게 옳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한국 금융산업에 박현주 같은 인물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금융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니 말이다. 그는 과거 제조업 후방지원에 머물던 내수 위주의 금융업을 해외진출의 선봉으로 내세우자고 말한다. 금융업이 약하면 어떻게 된다는 건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뼈저리게 겪은 적이 있다. 60∼80년대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나가 목숨 걸고 물건을 판 것처럼 이제는 금융회사들이 제2의 산업전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국내 금융시장에서 이런 말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자산운용업 역시 세계 정상의 삼성전자, 포스코처럼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훗날 미래에셋이 ‘한국 금융의 수출을 선도한 기업’으로 기록됐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박현주 지음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란 말이 있다. 원래 경매에서 불완전한 정보 탓에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값에 낙찰받는 것을 말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뜻으로도 널리 쓰인다. 이 얘길 왜 하냐 하면 요즘 미래에셋을 ‘질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한 인사이트펀드는 마치 블랙홀처럼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은행의 펀드 판매 창구에서는 “미래에셋에 가입시켜 달라”는 웃지못할 투자자도 있다고 들린다. ‘미래에셋=펀드’ 등식은 ‘제록스=복사기’처럼 시장 지배력이 압도적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업체에 힘이 쏠리면 이를 견제하려는 세력이 나오게 마련이다.

미래에셋을 ‘금융의 삼성전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좀 이른 평가다. 그러려면 골드만삭스·UBS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돼야 한다. 박 회장은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란 말을 즐겨 쓴다.
지금까진 바람개비만 잘 돌리면 갈채를 받았다. 앞으론 사방에서 쏟아지는 질투의 시선도 부담이다. 개척자 박현주 회장의 지혜로운 ‘멀티태스킹’을 기대한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