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IMF 10년과 장하준/곽인찬 논설위원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시각은 남 다르다. 그러면서 정곡을 찌른다.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맞서 싸우는 고독한 방파제 같다. 남들이 다 세계화를 말할 때 그는 세계화의 허상을 본다. 글로벌 스탠더드 속에 감춰진 부자나라들의 국익 이기주의를 본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이분법에서 올리브에 집착하는 낡은 발상이라고? 그렇지 않다. IMF 외환위기 10년을 맞아 장 교수의 울림은 새삼 곱씹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주장은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출발한다. 역사적으로 경제 최강국들은 정상에 오른 뒤 사다리를 걷어차는 수법을 흔히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경쟁국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다. 이 때 자유무역과 시장개방론이 등장한다. 서로 문 활짝 열고 공평하게 붙어보자는 거다. 골프로 치면 핸디캡을 인정하지 않고, 권투로 치면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싸우자는 거다. 영국이 사다리 걷어차기의 시범을 보였고 미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두 나라는 장 교수가 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전형이다. 상처 입은 나그네에게 서슴없이 소금을 뿌린다. 아무리 근사하게 포장해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결국 사다리 걷어차기와 소금 뿌리기를 고상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장교수의 견해다.

같은 맥락에서 IMF와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는 부자나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악한 3총사’일 뿐이다. 특히 IMF는 돈이 궁한 개발도상국 정부에 자유무역과 시장개방, 긴축(고금리) 등 이른바 IMF 패키지를 강요한다. 바로 10년 전 우리가 겪은 그대로다. WTO는 트레이드(Trade), 즉 교역의 범위를 미국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금융·지적재산권·서비스로 대폭 확장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선진국들이 예외 없이 자유무역·시장개방에 적극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도 자유무역·시장개방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앞뒤 순서를 뒤바꾼다. 적극적인 자유무역·시장개방에 힘입어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니라 선진국이 됐기 때문에 자유무역·시장개방에 적극적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현대 미국을 만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0달러짜리 지폐에 초상이 새겨진 해밀턴은 어떻게 미국 경제의 기초를 쌓았을까. “그의 견해의 핵심은 미국과 같은 후진적인 나라는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그 산업들이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장하준 저 ‘나쁜 사마리아인들’). 유치산업이란 단어 자체가 해밀턴이 만든 것이라니 놀랍다.

그랬던 미국이 지금은 마치 자유무역의 본산인 양 행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반덤핑 관세와 보조금 지급엔 거리낌 없이 이중 기준을 적용한다. 목표는 단 하나, 국익 극대화다.

신자유주의는 뒤늦게 한국에서 꽃을 피웠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은행들이 외국자본의 손에 속속 넘어갔다. IMF 모범생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위세 앞에 모두 몸을 낮췄고 자본의 국적을 따지면 시대에 뒤진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렇게 허둥지둥 10년이 흘렀다.
이젠 차분히 신자유주의의 공과를 짚어볼 때가 됐다. 기준은 당연히 국익이다. 미국마저 필요에 따라 문을 여닫고 있는 판에 혹시 우리만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보자. 외국 기업사냥꾼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국내 금융산업은 과연 외국의 거대 금융자본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탄탄한가. 외환위기 10년이 흐른 지금, 장 교수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