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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컨퍼런스 석학에 듣는다] <1> 릭 그로브 ‘러터 어소시에이트’ 대표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8.31 22:15

수정 2014.11.06 04:04



파이낸셜뉴스 주최로 지난달 27∼28일 서울에서 열린 ‘제6회 서울국제파생상품컨퍼런스’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헤지펀드 시장과 그린 파이낸스’를 주제로 열린 이번 컨퍼런스에는 파생상품과 헤지펀드, 대안투자 등 국내외 주요 석학들이 대거 참여해 열띤 토론과 함께 비전을 제시했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주요 석학들을 만나 세계 금융시장의 현안에 대해 물어 봤다.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릭 그로브 러터 어소시에이트 대표이사(사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를 통해 미 금융시장이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미 금융권은 내부 쇄신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위험을 대하는 정부와 기업의 태도이다. 위기 이전의 금융 시장은 위험 관리에 대해 구색만 갖추는 형식이었다면 지금은 이 문제를 기업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1980년대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파산사태나 1997년도 아시아의 외환위기, 1998년 미국 월스트리트를 위기로 몰아넣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 등을 돌이켜 볼 때 리스크 관리 부재에 따른 비용을 호되게 치렀고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금융시장은 리스크 관리의 세부적인 분야인 파생상품의 밸류에이션부터 더 나아가 밸류에이션 방법론 개발을 고민하며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가치 측정 어려운 파생상품엔 가격표 붙여야

한 차례 폭풍우가 휩쓸고 간 자리.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포함된 AAA신용등급의 채권 시장지표는 현재 액면가의 50% 이하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것도 추정치에 불과하다. 현재 서브프라임 관련 상품 거래가 실종된 시장 상황에서 이들 파생상품의 밸류는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다.

릭 그로브 대표는 자산의 가치 측정이 어려운 파생상품에 대한 실질적인 밸류에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파생상품에 얼마나 리스크가 있는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상품의 가격과 미래 가치를 보고 구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2∼3년 전 서브프라임 파생상품을 매입한 은행들이 그 상품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은행들의 ‘묻지마 투자’가 최근 글로벌 신용 경색을 야기하는 주요 요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로브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IFRS의 경우 공정한 가격에 대해 정의만 내리고 있을 뿐 측정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IFRS 내에서도 밸류에이션 방법은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다”면서 “아직 기준이 제대로 정립됐다고 보기 힘들며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의 신회계기준(FAS157)이 세계적으로 도입되면 파생상품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밸류에이션만이 리스크 관리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밸류에이션은 리스크를 진단하는 도구가 될 뿐이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여부는 기업과 리스크 관리 부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은 위험 관리에 효과적 수단

파생상품이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손실을 키웠다는 오해에 대해서는 ‘단순한 오해’라고 딱 잘랐다.

씨티뱅크나 JP모건, 베어스턴스 등 유명 투자은행들이 법정 소송에 휘말리면서 미디어의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미디어를 통해 ‘파생상품’이 집중조명을 받게 됐는데 개념이 생소하다보니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겁부터 먹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리스크 관리에 파생상품이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파생상품의 원리가 실물 자산의 가치를 다시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물 자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부동산 버블’과 ‘버블’을 담보로 대출을 늘려간 주택보유자에 있다고 지적했다.

파생상품이 있건 없건 간에 부동산 버블이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이 같은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이와 더불어 그는 미 당국의 규제 감독 기능이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부분적으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경우처럼 규제가 풀릴수록 금융시장은 성장하기 마련이지만 중국시장은 여전히 규제가 강한 편”이라면서 “미국도 현재 미국과 중국의 중간 정도 되는 규제가 있어야 한다”며 파생상품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감독당국 감독 기능이 일정 부분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주당이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도 시장에 있어서는 효율을 강조했다” 면서 “시장에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을 만들기도 한다”고 시장자유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다.

프린스턴 대학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관계대학원에서 우등으로 문학사(AB)를 취득한 릭 그로브 대표는 하버드 법대에서도 우등으로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다.


그후 국제스와프파생상품금융협회(ISDA) 대표이사,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이사 등을 거쳐 지난 25년간 금융시장에서 금융투자자와 법률가로 활동해 오고 있다.

/mjkim@fnnews.com 김명지기자

■사진=김범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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